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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7일 목요일

왕후이, 아시아는 세계다[서평] - 황홀한 아시아에 대한 두려움

황홀한 아시아에 대한 두려움
조 명 기*
󰡔아시아는 세계다󰡕
왕후이(汪晖), 송인재 옮김, 글항아리, 2011
(汪晖, 󰡔亞洲視野, 牛津大學, 2010)

 왕후이는, 이론적으로 그리 엄밀한 개념이 아니라
고 하면서도 역사적 뿌리가 풍성한 ‘트랜스시스템사회trans-systemic
society’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트랜스시스템사회를 “서로 다른 문명․종교․종족․집단 및 기
타 시스템을 포함하는 인간 공동체이거나 사회 연결망”(409쪽)으로 설
명하면서 “각 시스템이 상호 침투하고 사회 연결망을 구성하는 특징을
더욱 강조한다.”(410쪽) 그리고 근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진행되는 문
화ㆍ정치 등 각종 차원의 트랜스내셔널, 트랜스로컬, 트랜스에스닉 활동
은 결국 경제활동의 역량으로 포섭되고 있다고 지적하는 한편, 트랜스시
스템사회는 이와는 정반대로 “서로 다른 문화, 종족집단, 지역이 교류ㆍ
전파ㆍ병존하면서 서로 연관된 사회 형태와 문화 형태를 형성한다”(9쪽)
고 주장함으로써 대립관계를 분명히 드러낸다.


원문보기

archive.locality.kr/z/docdownload.php?d=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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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498226.html
등록 : 2011.09.27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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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대표 지식인 왕후이 ‘아시아는 세계다’ 출간
문화 교류·융합으로 만들어진 사회
유럽중심주의 넘어 중 근대사 풀이

지난 4월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가 <황해문화>, <한겨레>와 함께 연 사회토론회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꼽히는 왕후이(사진)는 중국의 사회발전 노선을 독립자주적인 모델이라며 그 의미를 강조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한겨레> 4월28일치 23면) 개혁개방의 부조리를 비판했던 신좌파 지식인은 도대체 어떤 경로를 거쳐 ‘중국 모델’을 강조하게 됐을까?
여기에 답을 줄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왕후이가 지난 15년 동안 썼던 논문 여섯편을 모은 <아시아는 세계다>(글항아리 펴냄)는 그동안 왕후이가 거친 사상적 여정을 보여준다. 특히 유럽 중심주의적 역사 서사에 제동을 걸고 중국과 인접국가들의 관계를 독자적으로 풀이해내는 등 기존 ‘신좌파 지식인’에서 세계시스템을 고민하는 이론가로의 도약이 두드러진다.
왕후이가 이 책에서 중점적으로 선보이는 핵심 개념은 ‘트랜스시스템 사회’(跨體系社會)이다. 그는 이 말을 “문화의 전파·교류·융합·병존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시스템을 내포한 사회를 뜻한다”며 “민족공동체 시각에서 이뤄지는 각종 사회 서술과도 다르고 다원사회라는 개념과도 다르다”고 풀이한다. 여러 시스템의 단순한 네트워크가 아니라 시스템들이 서로에게 침투하며 변동하는 동태적인 모습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는 유럽 중심주의를 넘어 독자적으로 중국과 중국을 둘러싼 근대사를 풀이하기 위한 시도다. 이를테면 일본·한반도·류큐·베트남 등은 모두 이른바 유교 문화권과 한자 문화권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하나의 단일한 종합체’를 형성하지는 않았다. 기독교 문명은 정체적 경계와 문화적 경계의 통일을 갈망했지만, 유교 문명권에서는 결코 양자 사이의 정치적 통일을 강렬하게 추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왕후이는 기존의 ‘조공 체계’라는 풀이를 넘어서, 이를 ‘트랜스시스템’의 역사적 원류로 본다. 또 이런 논점을 티베트와 류큐를 둘러싼 현실 속에서 풀어내기도 한다.
왕후이의 이런 논점은 이전부터 꾸준히 보여줬던 신자유주의 세계화 또는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비판과 맥이 닿아 있다. 서로 다른 정치·문화적 요소들이 복잡한 시스템을 넘나들며 침투한다는 트랜스시스템의 개념은 경제활동이 각종 정치·문화적 요소들을 삼켜버리는 현재 전지구적 지배 메커니즘을 비판하기 위한 도구로 쓰일 수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꼽히는 왕후이
왕후이는 이 책에서 “오늘날 미국의 금융 패권을 포함한 여러가지 패권들은 미국의 군사적 패권과 국가적 패권이라는 기초 위에서 형성됐으며, 이러한 패권 없이는 모든 것이 붕괴되고 와해될 수 있다”며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한다.
최근 중국의 부상을 새로운 패권의 등장으로 보거나 민족주의적인 위세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왕후이는 이 책을 통해 한발 앞서 제동을 걸고 더욱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성찰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최원형 기자


충칭모델, 신좌파, 중국의 미래 -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추이즈위안/ 돌베개)

충칭모델, 신좌파, 중국의 미래

[책소개]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추이즈위안/ 돌베개)



By   /   2014년 3월 2일, 12:2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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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시장경제’ 이후 20년, 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난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는 중국 지도부가 주요 정책 방향을 발표함으로써 이후 중국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회의였다.
1978년 열린 11기 3중전회에서 개혁개방 노선이 채택되었고, 1993년 14기에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공식화한 바 있다. 이번 3중전회 또한 중국의 새로운 성장모델과 개혁안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되었으나, 시장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국유경제를 양립하겠다는 절충안에 그쳤다.
하지만 이 회의는 그간 중국사회의 문제로 줄곧 제기된 쟁점들을 전면화함으로써 중국의 향후뿐만 아니라 그간 중국이 지나온 길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국유기업 개혁, 반부패 정책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민생문제들, 즉 도시.농촌 격차, 농민공(농촌 출신으로 도시에 와서 일하는 노동자. 중국은 엄격한 주민등록제를 시행해, 도시 주민등록이 없는 농민공에게는 복지 혜택을 주지 않는다.)을 비롯한 도시빈민의 교육.주거.의료문제, 주민등록제(후커우)문제, 토지개혁 등이 논의되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 확립 이후 20년,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구호로 내세우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기존의 체제 유지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도입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앞서 언급한 새로운 문제들에 직면했다.
특히 거대 국유기업을 위시한 특권층은 막대한 부를 독점하고 있지만, 대다수는 성장의 과실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진단은 중요한 구심점이 되었다.
프티부르주아
이른바 ‘충칭모델’
1990년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돌출된 흐름이 이른바 ‘신좌파’이고, 이후 이들의 이념에 바탕해 중국 서남부의 대도시 충칭에서는 국유자산과 시장원리가 독특하게 결합된 경제.사회 정책이 추진되었다. 이른바 ‘충칭모델’이라 불리는 것으로, 시장개혁론에 입각해 국가의 지나친 개입을 반대하는 ‘광둥모델’과 대비되는 발전모델이다.
2012년 중국 최대의 정치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던 보시라이는 ‘중국 좌파의 영웅’이었고 충칭의 당서기였다. 보시라이 실각 이후, 충칭모델과 신좌파의 목소리가 뒷전으로 밀릴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던 것도 사실이지만, 충칭시 시장 황치판은 18기 3중전회에 제출된 중대한 개혁방안의 초안 작성자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도대체 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중국의 대표적인 신좌파 지식인이자 충칭 제도개혁에 깊이 관여한 바 있는 추이즈위안은 이러한 중국의 상황에 대해 과감한 분석과 대안을 들려준다. 그는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를 사상적 입지로 삼으며, 중국적인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충칭의 경험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작업을 시도한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자유사회주의와 중국의 미래>(돌베개, 2014)는 <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창비, 2003) 이후 11년 만에 국내에 소개되는 추이즈위안의 저작이다.
서구의 프레임 밖에서 중국 현실에 대한 독자적인 사유를 모색하는 중국 지식인들의 텍스트를 선별한 ‘현대 중국의 사상과 이론’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원톄쥔의 <백년의 급진>에 이은 두 번째 책.
중국의 경험과 진보적 이론들을 종횡하는 실천의 궤적
현재 중국 칭화대학 공공관리학원 교수로 재직 중인 추이즈위안은 중국 신좌파 지식인 그룹의 대표적 이론가이다. 중국 국방과학기술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시카고대학에서 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다양한 사상적 자원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구축했다.
추이즈위안은 1990년대에 중국적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제도적 혁신에 관한 글을 발표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사회가 서구와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라는 믿음을 고수했으며, 정치적 구호로 치부된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는 중국의 개혁이 신자유주의에 맞서려면 사회주의적 경험의 합리적 요소를 살리되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나 서구의 사회민주주의와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서구의 사회민주당은 급진적인 영감을 일찌감치 잃어버렸다. 사회민주당의 강령은 기존 시장경제 체제의 형식에 도전하고 이를 개혁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회의 구조적 격차와 계급계층 제도로 인한 후유증을 완화시키는 데 치중한다.”(24쪽)
그래서 그는 프루동, 존 스튜어트 밀로부터 헨리 조지, 실비오 게젤, 제임스 미드, 로베르토 망가베이라 웅거 등의 진보적 이론들을 흡수하여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자유사회주의)의 흐름을 복권해내며, 그러한 시야 속에서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분석한다.
여기에는 물론 중국의 현실적 경험, 페이샤오퉁과 장펑춘 같은 중국 현대 사상가들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 홍콩 등 다른 국가의 제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뒷받침되어 있다.
추이즈위안은 중국의 농촌 토지소유제도, 향진기업, 국유기업제도 등에서 이 새로운 사회주의의 싹을 발견해냈으며, 충칭의 실험에서 자신이 주장한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가 하나의 체제로 실현될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당시 충칭시 시장이었던 황치판의 제안으로 2010년 5월부터 충칭시 국유자산관리감독위원회에서 일하며 정책개혁에 참여했다.
이처럼 추이즈위안의 궤적은 비서구사회인 중국에서 가능한 보편적 이론 생산의 한 가지 모델을 제시한다.
해제에서 류준필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추이즈위안은 이른바 서방의 기준으로 중국의 현실을 판단하는 시각을 경계하는 한편,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일반적 존재 양상과도 구분되는 중국적 현실과 경험의 독자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서구의 전통에 내재된 요소들을 당대 중국적 현실을 해명하는 데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201쪽)
추이즈위안은 중국의 현실에 바탕을 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해서 서구 사상의 전통적인 요소들과 동시대 사상들을 종횡하며 진보적인 이론을 재구성한다. 또한 충칭실험에 나타난 새로운 정치·사회적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검토·재해석하고 직접 정책생산 과정에 개입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의 기록이 담긴 추이즈위안의 글들은 서구 이론과 중국의 현실, 보편과 특수, 이론과 제도가 만나는 지점에 대한 다양한 사유를 촉발한다. 이론이 한 시대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자 응답임을 환기시키는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은 한국의 학자와 정책 관계자들에게도 풍부한 영감을 제공할 것이다.
자유사회주의, 공화주의 그리고 신국제주의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에 수록된 글들은 크게 세 가지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자유사회주의, 공화주의 그리고 신국제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 자유사회주의와 중국의 미래」「헨리 조지, 제임스 미드, 안토니오 그람시: 충칭개혁의 세 가지 이론적 관점」「‘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경제학적 함의에 대한 재인식」「‘충칭의 경험’과 제도혁신」 등 네 편의 글은 프루동과 존 스튜어트 밀에서 제임스 미드에 이르기까지의 ‘자유사회주의’ 이론을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의 개혁 경험, 특히 충칭의 실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를 논의한다.
한편,「‘혼합헌법’ 그리고 중국정치의 세 층위 분석」은 ‘공화주의’ 시각에서 중국의 정치개혁을 탐구하며, 「‘아시아적 가치’ 대 ‘서구적 가치’라는 사유방식을 넘어서: 인권문제를 보는 시각」「제3세계에서 서구중심주의와 문화상대주의의 초월」「시바이포 포스트모던: UN인권선언과 보편적 역사의 여명」은 민족주의와 서구 중심주의를 넘어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적 발전을 기원하는 ‘신국제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전통과 그 의의를 과감하게 재구성한「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에서 추이즈위안은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를 ‘자유사회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으며, “중국 및 세계에서 마르크스주의, 사회민주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경쟁할 것”이라는 야심을 내비친다.
그가 이야기하는 프티부르주아(소자산 계급)는 ‘중산 계급(중산 계층)’이라는 개념과 다르며, 당연히 농민을 포함한다. 그에 따르면,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의 경제적 목표는 개혁과 기존 금융시장 체제의 전환을 통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건설하는 것”이며, “정치적 목표는 ‘경제적 민주주의와 정치적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것은 계급 대립 없이 모든 시민이 공동의 부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를 강조한 덩샤오핑의 ‘소강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추이즈위안은 현대 중국의 토지소유제, 기업제도 등이 자본주의와는 다른 대안적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설명하며, 여러 이론가들의 논의를 오가며 금융과 노동과정, 소유권 개혁 등 제도혁신과 관련된 아이디어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추이즈위안의 구상이 현실에 가깝게 구현된 곳이 바로 충칭이었다. 「헨리 조지, 제임스 미드, 안토니오 그람시」「‘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경제학적 함의에 대한 재인식」「‘충칭의 경험’과 제도혁신」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관한 의미 있는 실천으로서 충칭 제도개혁을 맥락화해낸다.
충칭실험의 핵심은, 정부가 토지와 기업을 공유자산으로 소유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함으로써 지가 상승 수익과 국유기업의 시장 수익을 사회적으로 분배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달리, 높은 세율 없이도 안정적인 재원을 확보해 민간부문의 발전을 도모할 뿐만 아니라 민생을 지원해왔다.
또한 지표거래제도의 시행과 주민등록제(후커우) 개혁을 통해 도농 통합발전을 촉진하고, 차별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농민공’들이 도시주민과 동등하게 공공임대주택 등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충칭시 정부는 삼진삼동, 빈농 자매결연, 민생 대탐방 등의 제도를 통해 간부들이 인민에게 봉사하도록 독려했다.
추이즈위안은 이러한 충칭의 제도개혁에 대해 헨리 조지, 제임스 미드, 안토니오 그람시 등의 이론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은 충칭개혁 이론가의 언어를 통해 중국을 뜨겁게 달군 충칭의 경험을 다각도로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현재 중국이 겪고 있는 첨예한 문제들, 그리고 그것을 돌파하는 사유와 실천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추이즈위안은 공산당 중심의 관료주의와 국가주의의 위험에 맞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탐색하고, 서구 중심의 보편주의와 중국 민족주의를 넘어선 신국제주의 이념을 모색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을 한국의 독자들과 함께 나누기를 바란다.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문제를 해결해고자 하는 충칭의 혁신적인 실험과 추이즈위안의 이론화 작업은 중국사회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소중한 교훈을 전달한다. 이 책 <프티부르주아 사회주의 선언>은 국가의 역할, 자본주의 너머의 정치, 좌우라는 경직된 이념을 넘어서 정치적.경제적 민주주의의 재구성을 고민하는 한국의 진보적 독자들에게 신선한 지적 자극을 줄 것이다.

'중국 사회주의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남주, 2013


중국의 '좌우논쟁(左右之爭)'과 시진핑체제

[세교연구소 심포지엄 '중국 사회주의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발표 2]

이남주 성공회대학교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1.17 14:43:00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09777 
1. 문제는 '이데올로기'이다

2013년 8월 19일 중국공산당 총서기인 시진핑(習近平)은 전국선전사상공작회의에서 "경제건설은 당의 중심사업이며 이데올로기사업도 당의 극도로 중요한(極端重要)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중국공산당이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지만 이 주장이 중요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데는 다음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덩 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이라는 새로운 실험이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좌초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시한 '부쟁론(不爭論)'이라는 원칙의 변화를 함의하고 있다. 경제개혁과 관련한 여러 실험들이 중국공산당이 신봉했던 전통적인 사회주의론에 따르면 사회주의로부터의 일탈이나 반사회주의적 것으로 비판받는 것을 피하고 경제개혁을 지속시킬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덩에게는 매우 중요한 과제이었다. 1989년 6월 천안문사태 이후에는 보수파들이 정치불안의 원인을 사회주의 원칙에서 벗어난 경제개혁에 있다며 경제개혁의 성격이 사회주의적인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적인 것인가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경제개혁의 방향과 관련한 논란이 더 증가했다. 이러한 시점에서 덩은 개혁개방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을 요구하며 "논쟁을 하지 않는 것은 나의 발명이다. 부쟁론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다. 논쟁이 시작되면 상황이 복잡해지고 논쟁에 시간을 모두 소모하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논쟁하지 말고 대담하게 시도하고 대담하게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 그런데 시 진핑의 위의 주장은 이데올로기의 중요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논쟁을 회피하지 말고 적극적인 대응을 요청하고 있다.

둘째, 최근 중국공산당의 일련의 움직임이 위의 주장이 상투적 언사가 아니라 중요한 정치적 함의가 있다는 판단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2013년 4월 22일 중국공산당 중앙이 당내에 배포한 「현시기 이데올로기영역상황에 대한 통보」(關於當前意識形態領域情況的通報)라는 문건이 많은 주목을 끈 바 있다. 이 문건에서는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는 잘못된 경향을 나열했는데, 여기에는 서방식의 헌정민주(西方憲政民主)를 선전하며 (중국공산)당의 영도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정치제도를 부정하려는 시도, 보편가치(普世價值)를 선전하며 당통치(黨執政)의 시상이론기초를 동요시키려는 시도, 시민사회(公民社會)를 선전하며 당통치의 사회기초를 와해시키려는 시도, 신자유주의를 선전하며 당의 기본경제제도를 변화시키려는 시도, 서방언론관을 선전하며 우리나라의 당이 언론을 관리하는 원칙과 신문출판관리제도에 도전하는 것, 역사허무주의를 선전하며 중국공산당과 신중국의 역사를 부정하려는 시도, 개혁개방과 중국특색사회주의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의문시하는(質疑) 것 등 일곱가지가 사례로 제시되었다. 이 문건에서 비판의 칼날은 주로 자유주의적 경향을 향하고 있다.(2) 그런데 이 역시 덩샤오핑은 위에서 언급한 남순강화에서 "중국은 우를 경계해야 하지만, 주요하게는 좌를 방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과 차이가 있다.(3)

위의 두가지 변화는 중국공산당은 현재 이데올로기를 매우 중요한 문제로 당의 이데올로기적 기치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고,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우'로부터 오는 위협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은 보여준다. 그렇지만 후자의 결론과 관련해서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주요 도전이 어디로부터 오는가에 대한 판단은 정세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올해 8월 이후 일부 관방매체에서 '민주헌정론'을 비판하는 글들이 본격적으로 게재된 것을 보면 시진핑체제가 좌로 경도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2012년 3월 보시라이(薄熙來)사건이 발생한 이후의 상황은 이와 정반대였다. 현재 자유주의적 경향이 더 중요한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작년에 좌에 대한 통제를 강화한 데 이어 이번에는 우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며 좌와 우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전통적 전략의 하나로 볼 수 있다.(4) 이러한 해석은 시 진핑이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의 정치보고에서 "폐쇄되고 경직된 과거의 길(老路)을 가지도 않고, 기치를 바꾸는 사특한 길(邪路)도 가지 않는다"라고 강조한 것과도 부합한다.

따라서 시진핑체제의 진로에 대한 성급한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먼저 이데올로기 문제가 왜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는지, 무엇이 주요 쟁점인지, 이에 대해 중국공산당은 어떤 선택지를 가지고 있는지 등을 검토하며 이후 변화를 예상할 필요가 있다. 다만 현재 중국공산당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 도전은 당내 노선투쟁이나 권력계승을 둘러싼 경쟁이 아니라, 사회에서 개혁개방노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며 중국공산당의 통치정당성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는 있다. 중국공산당이 최근 이념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불가피하게 된 원인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개혁개방노선 및 "중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중국 내 비판적 지식인들에 의해 촉발되었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사상논쟁의 양상과 주요 내용을 추적하는 것이 중국공산당이 직면한 문제의 성격을 더 분명하게 인식하고 시진핑체제와 중국 사회주의의 미래를 전망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2. 1990년대 이후 중국 사상계의 분화: 1차 분화에서 2차 분화로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은 1980년대 '신계몽'이라는 지향을 공유하며 근대적 정신의 수용을 중국의 나아갈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이는 문화대혁명(이하 문혁)이라는 사상적·정치적 충격에 대한 일차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도 한때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상주의적 정치운동이 재앙에 가까운 결과로 이어졌는가가 이들 고민의 출발점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개인숭배와 중국공산당으로의 과도한 권력집중 등을 문제의 원인으로 보았으며 이러한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과학과 민주라는 근대적 정신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이들의 비판성은 국가나 당과의 관계에서 표현되었다.(5) 그렇지만 이러한 공감대는 1990년대 들어 약화되면서 비판적 지식인들 내부의 분화가 시작되었다. 한편에서는 1980년대의 신계몽의 연장인 동시에 천안문사태를 겪으면서 자유주의적 지향을 더 분명하게 앞세운 흐름이, 다른 한편에서는 시장화 개혁과 대외개방에 따라 출현한 문제들로 인해 지구적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강조하는 새로운 흐름이 출현했다. 이러한 차이는 1990년대 중반 자유주의와 신좌파 사이의 논쟁으로 표면에 드러났다.(6) 이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논의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 상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7) 다만 이 논쟁이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들의 깊은 곤경을 드러냈다는 점은 지금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첸 리췬(錢理群)의 그 곤경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사회주의 기치하의 전제주의는 그들이 당장 타파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그들은 중국에서 전면적인 자본주의화를 실행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전자는 그들이 이미 충분히 맛보았고 계속되기를 원하지 않는 재난이며, 후자는 그들이 이미 느끼기 시작했고 예상할 수 있는 재난이다. 이로부터 이론상으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장점을 취하고, 양자의 단점을 제거하는" 종합사회(綜合社會)의 사상을 제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이 실현될 수 있는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또다른 유토피아적 환상이 아닌지 등이 모두 문제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방황하고 길을 알 수 없는 고민과 당혹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원주: 이 고민과 당혹감이 이미 나를 20여년 동안 힘들게 하고 있다. 이는 빠져들수록 더 깊어진다)(8)

중요한 문제들이 제기되는 했지만 이 논쟁의 사회적 영향은 제한된 것이었다. 이 논쟁이 사회적 역량과 상호작용하기보다는 지식인 내의 논의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우선 논쟁구도가 더 복잡해졌다. 자유주의와 신좌파라는 논쟁구도와 관련은 있지만 이 두 경향에 포함시키기 어려운 새로운 사조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의 분화를 1차 분화라고 한다면 2000년대 들어 2차 분화가 출현한 것이다. 좌파 내에서 소위 '마오좌파(毛左)'의 목소리가 증가했다. 이들은 "무산계급 영도 하의 계속혁명"이라는 문혁의 계급투쟁노선의 계승을 주장한다.(9) 신좌파도 문혁 내에서 긍정적 유산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이처럼 문혁노선의 전면적인 계승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현재 중국공산당의 노선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물론 이들 중 중국공산당 내부의 좌파와의 협력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현재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문혁시기 비판의 대상이었던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당권파"의 부활로 보는 견해도 많다. 즉 마오좌파의 경우는 개혁개방노선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중국공산당도 극복의 대상으로 보는 반면, 신좌파의 경우는 문화대혁명이나 개혁개방노선에 대해 전면적 부정이나 긍정이 아니라 "선택적 부정과 긍정"이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차이가 있다.

자유주의 경향과 관련해서도 개인의 자유(이사야 벌린의 구분을 따르면 소극적 자유)를 다른 어떤 가치보다 앞세우는 고전적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사이의 분기를 발견할 수 있다. 5·4운동 이래 중국 대륙의 자유주의 전통은 사민주의적 경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고 고전적 자유주의는 적극적으로 수용되지 않았다.(10)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 대륙에서도 일군의 지식인들이 자유주의라는 기치를 분명히 내걸고 나오면서 고전적 자유주의를 자유주의의 정수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하이에크가 중국 대륙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이와 관련한 논의가 증가한 것이 이러한 추세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사회민주주의 혹은 민주사회주의라는 기치를 내세우는 정치적 주장도 출현했다. 예를 들어 중국공산당 내의 개혁파 원로들이 주도해 창간한 『옌황춘치우』(炎黃春秋)라는 잡지 2007년 2월호에 개제된 한 글이 민주사회주의 논쟁을 촉발한 바 있다.(11) 셰타오(謝韜)는 「민주사회주의와 중국의 출로」(民主社會主義與中國出路)라는 글에서는 계급투쟁을 앞세우는 폭력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주사회주의(북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맑스를 올바르게 계승한 것이며, 중국에서 과거 기회주의로 비판을 받았던 민주사회주의가 맑스주의의 정통(마르크스주의의 공상적 측면을 제거한)이며 중국도 이를 목표로 하는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민주사회주의는 "민주헌정+혼합소유제+사회시장경제+복리보장제도"로 구성된다.(12) 스웨덴식의 사민주주의를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결합을 추구하는 경향이 여전히 무시할 수 없고, 이러한 지향이 유럽의 사회민주주적 전통과 친화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심지어는 자유주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친 후이도 「08헌장」(零八憲章)에 서명하지 않은 이유를 "주로 시민권과 정치권리를 강조하면서 경제사회 권리를 요구하지 않은 점도 유감"라고 설명하며 고전적 자유주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13) 반면 쉬 여우위(徐友漁)는 자유주의와 사민주의를 구분하며, 사민주의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도 자유주의에 사회민주주의보다 우선적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4)

이러한 변화를 고려하면 현재 사상계의 흐름은 마오좌파, 신좌파, 사민주의, 자유주의 등의 네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중국에서의 일반적 구분에 따르면 전자는 좌로 후자는 우로 분류된다. 이는 서구의 정치지형에서 사민주의가 좌로 분류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중국공산당 영도를 부정하고 서구식 의회주의 정치의 수용을 요구하는 주장을 우로 분류하는 관습이 더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15)

이러한 분화 과정은 우는 물론이고 좌에서도 중국공산당 노선에 대한 비판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중국공산당의 통치정당성에 무시할 수 없는 잠재적 위협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비판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과거보다는 크게 증가했다. 1990년대의 논쟁이 주로 지식인사회 내의 논쟁이었다고 한다면 최근 위의 경향들은 국가 혹은 사회와의 상호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신좌파의 일부 아이디어는 2000년대 들어 정부정책에도 반영되고 있으며, 지방차원에서 총칭모델 같은 새로운 실험과 결합되면 큰 파문을 일으켰다. 마오좌파의 주장은 개혁개방에서 소외된 계층 내에서 상당한 공명을 일으키고 있으며 마오에 대한 태도도 문혁 직후에 비해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자유주의 진영의 경우는 당국가체제와의 관계도 대립적이고 대중적 기반도 취약하지만 지식인, 언론매체 내에서의 영향력은 무시하지는 못할 정도로 증가했다. 남방집단(南方集團, 난판르바오 등 자유주의적 논조를 갖는 매체를 소유한 언론그룹)의 활약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중국공산당 내에도 사민주의적 경향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개혁파들도 적지 않다.(16) 사상논쟁이 사회적 역량과 연동되면서 중국의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이미 미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사상의 분화과정에서 중국공산당의 이데올로기의 주도성이 약화되고, 중국공산당 노선에 비판적인 사상경향이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중국공산당이 최근 이데올로기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3. 최근 사상논쟁의 주요 쟁점

위의 네가지 경향 사이의 차이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쟁점은 사회주의 유산에 대한 평가, 민주주의의 의미와 실천, 경제개혁의 방향 등 세가지이다. 이러한 쟁점과 관련해서 마오좌파-신좌파와 자유주의-사회민주주의 사이에 각각 친화성이 강하다다. 그러나 좌·우 내부의 차이도 주목하며 논쟁의 전개를 관찰할 필요가 있다.

1) 사회주의 유산, 특히 마오 저둥의 유산에 대한 평가

중국공산당은 개혁개방 이전의 역사에 대해 1981년 "중국공산당이 1956년까지는 올바른 노선을 견지했으나, 1957년부터 당의 지도방침에서 엄중한 잘못('반우파' 투쟁의 과도한 확대, 대약진운동과 '반우경'투쟁, 1962년 이후 계급투쟁의 확대화 등)이 출현했고, 1966년 시작된 문화대혁명은 국가와 인민에게 건국 이래 가장 엄중한 재난을 초래한 내란이었다"(『關於建國以來黨的若干歷史問題的決意』)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그런데 현재 좌와 우 모두 이러한 역사서술에 대한 도전이 증가하고 있다. 좌파는 문화대혁명까지 포함하는 마오 시기 사회주의건설의 경험에서 긍정적인 요소를 발굴하려고 시도하는 반면, 우파는 문화대혁명의 철저한 청산을 주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혁명과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좌파 내에서도 문혁과 같은 마오의 사회주의건설노선을 전면적으로 승인하는 마오좌파와 마오의 유산에 대한 선택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취하는 신좌파 사이의 차이가 있다. 전자의 입장은 장 홍량의 다음과 같은 주장에 잘 나타난다.

1966년부터 1976년 사이에 중국인민은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위대한 정치제도개혁을 진행해 집권정치(集權政治)와 집단정치(集團政治)가 서로 교차하는 정치모델을 근본적으로 돌파해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대중정치모델을 수립했고, "대명, 대방, 대자보, 대변론"(大鳴,大放,大字報,大辯論)의 권리를 헌법에 포함시켜 역사상 첫 번째로 진정한 노동자헙법을 만들었다좌파진영 중의 신좌파는 기치가 선명하고 대립적 입장도 분명하다. 개혁을 부정하고 문혁을 긍정하는 것이다.(17)

특히 마오좌파의 문화대혁명의 현재적 의미에 대한 강조가 흥미롭다. 문화대혁명 당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중국공산당 내 지도부는 자본가계급을 소멸시키고 사회주의로 진입한 중국에서 자본주의로의 회귀를 우려한 마오의 인식을 잘못된 것이라는 공식적인 결론을 내렸는데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는 자본주의로 회귀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들은 마오의 후기사상을 현재 중국공산당의 노선을 비판하는 사상적 자원으로 동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 신좌파의 경우는 문혁노선을 전면적으로 승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를 포함하는 '인민민주'의 경험, 건국 이후 자주성을 견지한 국가건설노선, 중국공산당의 자기조정 능력 등을 중국이 계승해야 할 중요한 유산으로 간주하고 있다.(18)

반면 자유주의는 마오의 유산 전반에 대해 비판적이다. 자유주의라는 이념적 성향을 고려하면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이들은 다음 두가지 점에서 공식적 역사서술에 도전하고 있다. 첫째는 문혁을 선언적으로 전면부정하는 것을 넘어서 문제의 근원을 밝히기 위한 적극적인 논의를 주장한다. 중국공산당은 이러한 논의가 개혁개방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문혁을 부정하는 것이 불가피했지만 이에 대한 논란이 정치적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문혁에 대한 논의를 억제해왔다. 그런데 최근 마오좌파와 신좌파의 문혁에 대한 재평가 시도가 자유주의자들의 비판을 부르면서 이와 관련한 논란이 확대되고 있다.(19) 둘째, 문혁에서 나타난 문제의 근원을 혁명 시기 중국공산당 활동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는 인식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인식에서 옌안정풍(延安整風) 운동 시기의 비판운동과 정치적 숙청을 문혁과 같은 건국 이후 여러 정치운동의 원형으로 평가된다. 이는 중국공산당의 혁명전통에 대한 부정이라는 함의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우파가 모두 이러한 극단적인 평가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사민주의적 흐름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경우는 대체로 신중국의 건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 이후 변화에서 문제를 찾는다. 예를 들면 『옌황춘치우』의 경우는 건국 직후의 국가방침이었던 '신민주주의론'으로부터의 이탈을 중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간 전환점으로 본다, 이들은 신민주주의를 중국이 추구할 일차적인 목표로 삼는 경우도 있다.(20) 첸 리췬의 '57년체제'도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2)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

중국공산당은 사회주의민주를 추구하고 있으며 중국공산당의 영도를 그 핵심원칙으로 삼고 있다. 좌파의 경우는 이러한 원칙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현재 중국공산당이 "노동계급의 선봉대"라는 본분에 충실한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우파는 당연한 중국공산당 영도라는 원칙을 민주주의의 진전을 가로막는 가장 중요한 제도적 장애로 간주하고 있다.

좌파 내에서는 마오좌파 내에서는 중국공산당이 이미 변질되었다는 주장까지 제기될 정도로 중국공산당에 대해 대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21) 이러한 인식에 따라 이들은 인민민주의를 활성화시키겨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당권파"를 견제하거나 청산하는 정치적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점이 이들이 문혁노선, 특히 조반정신(造反精神)의 계승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현재 이러한 동원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신좌파는 인민민주를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주로 서구식 민주주의론에 대한 비판을 하기 위한 자원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고 실행 가능한 프로그램으로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즉 "진정한 민주는 인민을 주인으로 만드는(人民當家作主) 민주이지 (이를 두려워하는 유산계급과 지식엘리트에 의해) 거세되고 무해처리된 민주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서구의 대의제 민주를 "선주(選主, 주인의 선출)"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지만 어떤 방식으로 이러한 진정한 민주가 실현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많지 않다.(22) 그리고 왕 후이(汪暉)의 경우 당의 자기조정능력 혹은 국가의 역할을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적어도 정치민주와 관련해서는 현 체제에 대한 비판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물론 왕은 "당의 국가화"라는 문제를 제기하며 정치체제에 대한 비판적 계기를 제시하거나,(23) "공개정치"를 통한 인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사회주의 정치개혁을 주장하기는 했다.(24) 그렇지만 이는 아직 논의 실마리를 던져놓는 것에 지나지 않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반면 자유주의는 인민민주는 이미 역사적으로 실패한 기획임이 증명되었고 민주헌정이라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정치제도를 정치개혁의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전제주의를 제거하기 위한 제도개혁을 주요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의 정치개혁에 대한 주장은 「08헌장」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된 바 있다.

1、헌법개정 2. 분권을 통한 견제와 균형 3. 입법기관의 직접선거 4. 사법독립 5. 군대의 국가화 및 경찰을 포함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6. 인권보장 7. 각급 행정책임자의 직접선거 8. 도농평등과 호구제도의 폐지 9. 결사의 자유 10. 집회의 자유 11. 언론자유 12. 종교의 자유 13. 공민교육 14. 재산보호 15. 세제 및 금융제도의 개혁 16. 사회보장 17. 환경보호 18. 연방공화 19. 역사적 문제에 대한 해결 및 보상

그러나 이러한 정치개혁의 방향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이라는 확신을 자유주의적 경향을 갖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서구식 정치제도의 교조적 도입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장기적이고 점진적인 개혁을 강요할 수 있는 역량의 축적과정을 통해 중국의 개혁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접근도 적지 않다. 첸 리췬은 특히 노동자의 이익과 권리 보호 및 언론ㆍ출판ㆍ결사의 자유, 특히 노동자와 농민의 결사의 자유에 대한 요구를 이러한 흐름을 형성하는 주요 고리로 제시하고 있다.(25) 이는 다당제, 직접선거, 삼권분립 등을 핵심적 요구로 내거는 위의 주장과 차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하층의 권리보호와 이들의 역량강화를 더 중시한다는 점도 중요한 차이점 중의 하나이다.

3) 경제체제 개혁과 관련한 논쟁

사회주의시장경제로의 전환은 개혁개방노선의 중대한 성과이다. 좌파는 이를 신자유주의에 편입되는 과정으로 보며 우파는 시장화 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금까지 시장화 개혁이 진행되는 동안 좌파적 문제의식이 국가정책에 반영되기는 어려웠고 우파의 아이디어들이 경제개혁을 이끌어왔다. 그런데 2003년 '후원체제(胡溫體制)'의 출범 이후 경제개혁의 방향과 관련한 논쟁에서 일견 좌와 우의 처지에 약간의 변화가 나타났다. 소유제 개혁을 둘러싼 논쟁의 양상이 이를 잘 보여준다.

물론 마오좌파는 개혁개방노선을 부정하고 있으며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국유기업 개혁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주식제로의 전환은 기업이 주주의 이익을 중시하는 방향으로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국유기업 내에서 노동자들은 종속적 지위로 전락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고 당시 소유제 논쟁을 촉발한 바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 많은 실업자가 발생해 개혁개방에 대한 반감이 증가되는 중요한 사회적 기초가 되었다. 그렇지만 시장경제체제가 도입된 상황에서 국유기업이 이에 부합하는 소유와 경영 방식을 개혁하는 것은 불가피한 과정으로 이들의 비판이 사태의 진전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중국의 경제개혁도 소유제라는 제약을 뛰어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을 보면 그러한 소유제라는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국유기업 개혁이다. 1900년대 후반 이후 국유기업의 수는 대폭 줄어들었지만 국민경제에 대한 영향력은 최근 10년간 뚜렷이 증가했다. 이러한 양상에 대해 개혁파는 지난 10년간 경제개혁이 중단되었거나 심지어는 퇴보했다고 비판하고 시진핑체제의 출범에 맞추어 국유기업의 독과점 해체 및 민영기업의 발전 등 소유제 개혁을 포함한 더 적극적인 개혁프로그램을 제시하고 기득권을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탑다운(top-down)' 방식으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26) 이에 대해 좌파들은 국유기업의 민영화는 사회주의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비판하고 있다(사회주의시장경제의 원칙 중의 하나가 "공유제를 주체로 하는 소유제"임).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학자들은 도시화 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호구제도의 개혁만이 아니라 (농촌) 토지의 사유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농민의 이익을 보호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농민의 도시민으로의 전환도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토지의 집체소유도 사회주의경제제도의 핵심적 요소로 이 역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현재 개혁파들은 사회주의시장경제라는 프레임을 넘어서는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경제개혁의 방향과 관련한 논란의 이념적 성격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좌파는 당연히 국유기업의 민영화 등 소유제 개혁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내에서도 어떤 경제체제가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견해의 차이가 있다. 마오좌파에서는 전통적 국가소유제로의 회귀를, 신좌파에게서는 국가소유제와 시장경제의 결합을 추구하는 주장이 상대적으로 더 강하다.(27) 반면 자유주의자들의 경우는 소유제 개혁에는 대체로 찬성하는 입장이나 부의 분배를 강조하는 입장과 철저한 시장주의적 원칙을 추구하는 입장 사이의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권력의 민주화가 전제가 된다면 국가의 경제에 대한 개입을 부정하지 않으나 후자는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다.

4. 사상논쟁과 시진핑체제의 미래

최근 위와 같은 사상논쟁은 중국 내에서 좌우논쟁으로 불리는데 실제로 세계에 대한 인식과 추구하는 가치라는 점에서 보면 마오좌파와 신좌파 사이에, 자유주의와 사민주의 사이에 각각 상당한 친화성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좌와 우 내부에도 쉽게 봉합되기 어려는 균열선이 존재한다. 마오좌파와 신좌파의 현재 정세에 대한 판단이나 중국공산당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다르다. 자유주의와 사민주의 사이에도 경제개혁의 방향이나 중국공산당에 대한 태도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사상논쟁의 향후 전개양상으로 다음 세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 첫째와 둘째 시나리오는 좌우구도가 유지되는 전제 하에서의 변화이다.

첫째, 좌우구도에서 좌파연합이 우위에 서는 것이다. 좌파연합을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으로는 장 홍량이 있다. 그는 중국공산당 내에서 사회주의적 이상을 견지하는 사람들까지를 좌파연합에 포괄시키는데,(28) 신좌파가 중국공산당 노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마오좌파와의 연합이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높지 않다. 좌파연합이 강화된다면 신좌파를 중심으로 마오좌파의 온건세력이 결합되는 양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럴 때만 중국공산당과의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최근 신좌파들의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는 평가들은 이러한 흐름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이 강화되고 정치적 힘을 얻게 되면 우파에서 제기하는 일부 건강한 문제의식이 현 체제 내에 반영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고 장기적으로 중국정치체제의 건강한 발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둘째, 좌우논쟁구도에서 우파연합이 우위에 서는 것이다. 우파연합이 추구하는 가치는 현재 중국의 당국체제와 대립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나리오가 출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즉 비판적 역량으로서의 영향력은 유지할 수 있겠지만 정치변화를 촉진할 정도의 세력을 형성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일부 자유주의자들의 급진적인 주장이나 친서구ㆍ친미적 태도는 중국인민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다만 이중 사민주의적 흐름은 중국공산당 내의 개혁적 흐름과 연결되고 위로부터의 개혁에 동력을 제공해줄 수 있으며 점진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을 촉진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러나 현재 이 입장도 사상논쟁 내에서 주류적 흐름이 되기는 어렵다. 좌우논쟁이라는 대립적 구도가 강화되는 상황에서는 설 자리가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셋째, 위의 두 시나리오와는 달리 좌우논쟁구도를 넘는 좌우연합의 형성도 예상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중국공산당에 가장 비판적 태도를 갖고 있는 좌우연합, 즉 마오좌파와 자유주의 사이의 연합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양자가 추구하는 가치 사이의 거리를 고려하면 실현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보다 더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은 신좌파와 사민주의 사이의 연합가능성이다. 즉 사회주의적 지향과 사회주의의 현대화라는 당면의 과제에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념적 거리가 앞의 경우보다 훨씬 가깝다.

다만 현재 첸 리췬의 신좌파 지식인, 특히 왕 후이에 대한 비판에서 나타나듯이 양자 사이의 관계에서도 대립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29) 첸은 왕 후이와 같은 신좌파 지식인들이 국가 및 당에 친화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과 이에 대한 독립성의 상실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위의 설명에서 나타나듯이 이러한 비판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양상을 근거로 신좌파 지식인들의 태도가 과거와 근본적으로 달라졌거나 나아가 국가주의에 굴복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치다. 우선 신좌파가 개혁개방노선의 신자유주의적 측면을 비판하기는 했지만 중국의 정치체제 자체를 문제로 삼았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태도의 근본적 변화로 보기는 어렵다. 이들이 중국공산당이 개혁개방노선이 초래한 부작용에 대해 조정을 시도하는 것에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협력하는 것 자체를 문제로 삼는 것은 과한 비판이다. 그렇다면 첸이 중국공산당의 통치정당성에 대해 과거보다 더 비판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 최근 균열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첸 리췬은 21세기 들어 중국의 부상에 따라 중국 내 민족주의, 중화주의, 국가주의 등이 강화되는 것에 대해 큰 불안감을 표명하고 있다.(30) 민족주의적 경향이 지식인들이 독립성, 창조성, 비판성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강화되고 상황에서 신좌파가 국가에 협력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에 더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이다.

첸의 문제의식이 나름의 의미가 있고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신좌파 지식인들이 국가와 당과의 관계에서의 독립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렇지만 첸 리췬이 신좌파를 비판하면서 강조하는 지식인들의 독립성과 비판성의 범주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문제도 존재한다. 현재 그에게 비판성은 중국공산당과의 관계에만 적용되고 있으며 지구적 자본주의와 관계에 대해서는 거의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전자의 문제의식만이 강조된다면 첸 리췬의 입장은 점차 더 단순한 자유주의적 방향으로 경도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렇게 될 경우 그의 강조하는 비판성의 의미도 반감될 수 있다. 그 스스로 표명했던 표명했건 곤혹감이 너무 단순하게 해소되고 있는 느낌이다.

신좌파와 사민주의 연합을 위해서는 첸 리췬의 애초의 문제의식 속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중국공산당과의 관계에서만 민주주의의 의미를 따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지구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의 확산 속에서 민주주의의 토대가 무너지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첸은 후자의 문제의식은 서구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며 중국에서는 이러한 논의는 중국공산당의 전제를 용인하는 길을 열 뿐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과 계획경제에 대한 반작용으로 신자유주의적 흐름이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문제도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결코 서구적 문제만은 아니다. 다른 한편 신좌파의 경우에는 당국체제와의 관계에서 비판성을 어떻게 견지할 것인가라는 과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왕 후이의 "정당의 국가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당의 자기교정능력"에 대한 적극적 평가 사이의 긴장은 그의 사상이 더 진전될 수 있는 계기를 내포하고 있지만 현재 후자가 전면에 부각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왕 후이로서도 이 긴장관계를 적극적으로 대면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자 사이에 이러한 문제의식들이 공유될 수 있다면 문혁이라는 유령을 다시 호출하는 것이 아닌 인민민주, 신자유주의를 호출하는 것이 아닌 경제사회개혁에 대한 논의에 집중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의공간이 열릴 수 있는가의 여부에는 중국공산당의 선택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 시진핑체제는 극단적 사조(자유민주주의와 마오파/문혁파)를 강하게 통제하며 체제외 세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사회민주주의와 신좌파적 문제의식의 선택적으로 수용(co-opt)하면서 이데올로기 영역에서 중국공산당의 주도력을 강화하고자 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공산당-신좌파-사회민주주의' 사이의 긍정적 상호작용이 출현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중국공산당이 이러한 구도를 원하는지는 의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사회의 자율성을 어느정도 인정할 것인가에 있다. 중국공산당은 이에 대해 여전히 큰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전제가 존재하지 않으면 앞으로 비판적 지식인들과 국가 사이의 긍정적 상호작용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현 시기 이데올로기영역상황에 대한 통보」(關於當前意識形態領域情況的通報)에서는 한때 수용적 태도를 보였던 '공민사회'에 대한 선전도 이데올로기적으로 위험한 경향으로 간주한 것은 이와 관련해 좋은 신호는 아니다.(31) 이러한 상황에서 경제개혁만 적극적으로 추진될 경우 경제체제와 정치체제 사이의 괴리는 더 커져갈 것이다. 전임지도부는 10%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률로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이 약화되는 것을 보완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8% 이하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는 시진핑 시대에는 경제적 실적으로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기제가 작동하기 어려울 것이다. 경제개혁만으로 직면한 문제의 돌파구로 삼을 수 없다는 점에서 중국의 시진핑체제는 새로운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5. 중국 사상논쟁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

중국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 것인가는 중국의 부상에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이다. 동아시아 지역질서에서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가 인구, 영토, 그리고 하드파워 등에서 나타나는 국가간 비대칭이다. 중국의 부상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수록 이 문제는 계속 커질 수밖에 없고 이는 인위적으로 해결하기도 어렵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유력한 방안 중의 하나는 지역협력 속에서 비대칭성이 초래하는 문제를 완화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지역을 균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지역협력질서의 발전에 공헌할 수 있다면 미국의 역할도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이 형성되지 않은 채 중국의 부상이 진행되는 것은 지역에 정치적으로 큰 부담을 줄 것이다. 그렇지만 국가간의 외적 관계를 규율하는 질서의 구축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각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양립할 수 있는가, 이들이 어느 정도 친화적인가도 지역질성의 안정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사상논쟁은 우리에게 중요한 관찰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적절한 개입과 상호교류가 필요한 영역이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최근 중국 사상논쟁에 대한 관심이 중국의 좌우논쟁구도를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특정한 논리에 대한 지지여부로 중국의 사상논쟁을 소비해서는 안 된다. 현재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우리도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다.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경제모델, 민주주의의 내용적 심화, 그리고 이를 위한 전제로서의 평화적 지역질서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신좌파와 사민주의적 문제의식이 결합될 수 있는 지점에 대한 논의가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과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한 출발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결합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이를 결합시킬 수 있는 서구는 물론이고 동아시아의 사상자원은 어떤 것이 있는가 등이 이와 관련해 던져질 수 있는 질문이 될 것이다. (*)

□ 필자 주석

(1) 『鄧小平文選 第三卷』 374면.

(2) 다만 마지막 일곱번째의 내용이 예외로 이는 주로 좌파의 "개혁개방이 과도하다" "사회주의라는 방향에서 벗어났다" 혹은 "중국이 현재 실행하고 있는 것은 신관료자본주의이다" 등의 개혁개방에 대한 비판을 겨냥한 것이다. 이 문건의 주요 내용이 New York Times 2013년 8월 19일자에 소개되었고, 전문은 『明鏡月刊』 2013년 9월호에 게재되었다.

(3) 『鄧小平文選 第三卷』 375면.

(4) 필자는 작년 보시라이 사건에 대해 "보시라이의 파면으로 '좌우논쟁'이 개혁파 혹은 우파의 승리로 마무리됐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현재 중공 지도부가 가장 신경을 쓰는 문제는 사상논쟁 등으로 권력전환기에 정치적 통제력이 약화되고 사회불안이 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공 통치에 도전하는 우파에게도 동일하게 경우에 따라서 더 엄격하게 대응할 것이다"하고 평가한 바 있다. 이남주 「보시라이 사태와 중국 권력투쟁」,『경향신문』 2012.3.23. 

(5) 물론 1980년대 비판적 지식인과 당과의 관계가 대립적이었다고만 보기 어렵다. 후 야오방(胡耀邦) 같은 당내 개혁파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듭된 당 내부의 정치운동으로 당내 개혁파가 실각하거나 영향력을 상실하면서 자유주의적 지향과 당과의 관계는 점차 대립적인 방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9년 천안문사태가 이러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고착화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6) 당시 또다른 중요한 논쟁으로 "보수주의 대 급진주의"의 논쟁이 있다. 이는 중국에서 혁명의 유산을 비판적으로 보고 사상적으로 이러한 유산을 청산하려는 보수주의와 혁명적 전통의 계승이라는 점에서 급진주의를 옹호하는 논쟁구도이었다. 따라서 여기서의 보수주의를 소련 및 동유럽의 체제전환과정의 혼란을 근거로 정치안정을 우선시하는 경향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치변화에 대한 태도를 둘러싼 이 논의는 이 글에서 분석하지 않았다. 이러한 태도 자체가 중국의 미래에서 대한 독자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도 같은 이유에서 이 글의 논의대상에서 제외했다. 

(7) 신자유주의와 신좌파 논쟁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許紀霖「總論」,『啓蒙的自我瓦解: 1990年代以來中國思想文化界重大論爭硏究』, 吉林出版集團有限責任公司 2007과 賀照田「當代中國思想論爭的歷史品格與知識品格」,『當代中國的知識感覺與觀念感覺』, 廣西師範大學出版社 2006 등을 참고. 당시 논쟁과 관련된 주요 문헌들은 李世濤 主編『知識分子立場: 自由主義之爭與,中國思想界的分化』, 時代文藝出版社 2000에 수록되어 있다.

(8) 錢理群『毛澤東時代和後毛澤東時代 1949~2009』, 聯經 2012, 243면. 인용문은 1995년에 쓴 글을 재인용한 것이고 괄호안의 주는 이 책에서 새로 추가한 것이다.

(9)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중앙민족대학 교수인 장 홍량(張宏良)을 들 수 있다. 

(10) 錢理群, 앞의 책 328~29면. 고전적 자유주의를 중국 사상계에 처음으로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인 인 하이광(殷海光)이다. 그는 1950년대 타이완에서 하이에크의 저작을 번역 출판했고, 이것이 중국 지식인들이 자유주의 내의 두가지 전통을 명확하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인 하이광의 사상에 대해서는 殷海光 著·賀照田 編 『思想與方法:殷海光選集』, 上海三聯書店 2004를 참고.


(11) 이 논쟁과 관련한 논의들은 黃達公 編 『大論戰-民主社會主義與中國出路』, 天地圖書 2007.

(12) 앞의 책 26~27면

(13) 이창휘ㆍ박민희『중국을 인터뷰하다』, 창비 2013, 164면.

(14) 徐友漁「自由主義還是社會民主主義」,『重讀自由主義及其他』, 河南大學出版社 2008, 171면.

(15) 양판(楊帆)과 천 즈밍(陳子明) 등은 사민주의를 중좌로 구분하는 4분법을 주장한다. 이들은 효율과 공평, 민주와 전제라는 기준으로 극좌, 중좌, 중우, 극우로 구분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류에서는 중국의 사상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신좌파의 위치가 모호해지는 문제가 있다. 陳子明「憲政旗幟下的左右翼聯合戰線」,『領導者』 第十八期(2011)과 楊帆 等「論中國社會思潮與國際接軌」, 天則所雙周學術論壇 第479次(2013.6.21.).

(16) 민주사회주의 논쟁을 촉발한 『옌황춘치우』의 고문을 맡고 있는 두 룬셩(杜潤生)과 관련해서는 원자바오(溫家寶, 전국무원총리), 왕치산(王岐山, 중공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천시원(陳錫文, 중앙재경영도소조판공실 부조장), 두잉(杜鷹, 발개위 부주임) 등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그를 방문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林珊珊ㆍ杜强「9號院的年輕人」,『南方人物周刊』 2013.8.26, http://www.nfpeople.com/story_view.php?id=4762.

(17) 2006년 9월에 발표된 이 글(張宏良「当前中国左派和右派的斗争」)을 계기로 장홍량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는데 여기서는 자신과 같은 입장을 신좌파로 지칭하고 있다. 이 글은 마오좌파의 복귀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http://blog.sina.com.cn/s/blog_9b12a6df01013hpp.html

(18) 인민민주 경험에 대한 추이 즈위안(崔之元)의 긍정적 평가는 이창휘ㆍ박민희, 앞의 책 200~4면을 참고. 중국공산당의 자기교정능력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汪暉 「中國道路的獨特性與普遍性」을 참고. 
http://www.chinadaily.com.cn/zgrbjx/2011-04/27/content_12408422.htm

(19) 쉬 여우위가 최근 『陽光時務周刊』에 '문혁에 대한 성찰'(文革反思)이라는 제목을 게재한 9편의 평론이 이러한 사례 중 하나이다. 이 글들은 다음 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http://www.impactchina.com.cn/ziyouluntan/2013-08-05/30509.html 

(20) 杜導正「新民主主義的回歸與發展」,『炎黃春秋』 2009年 第4期, 6~12면. 최근에는 원로 당개혁파만이 아니라 최근 태자당 내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中國稅務』 잡지사의 전 사장 장 무셩이 중국이 신민주주의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해 관심을 끈 바 있다. 張木生「改造我們的文化歷史觀」, 軍事科學出版社, 2011. 이 책의 출판기념 토론회에서 전국구주석 류 샤오치(劉少奇)의 아들인 류 위엔(劉源) 상장이 인민해방군의 장성 5명을 인솔하고 참여해 관심을 끈 바 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의 통치전략의 일환으로 신민주주의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그의 논리와 신민주주의를 자유주의적으로 전유하려는 두 다오정(杜導正)의 논리 사이에서는 차이가 있다.

(21) 이러한 경향을 대표하는 사이트로는 華岳論壇 토론방이 있다. 이 사이트에 글을 올리는 주요 필자들은 후원체제나 시 진핑과의 협력을 주장하는 장 홍량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http://washeng.net/HuaShan/BBS/shishi/gbcurrent.html

(22) 王紹光『民主四講』, 三聯書店 2008, 242~43면. 왕 샤오광은 선주라는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추첨제로 선거를 대체하는 것, 협상(deliberation)의 강화, 전자민주주의, 공장민주주의와 거시정책결정에 노동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의사결정체제 등을 포함하는 경제민주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이 현재 중국정치체제 내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왕 후이도 '대표성단절'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서구의 대의적 민주주의가 진정한 대표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으나 중국의 사회주의민주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한, 또는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재한 체제인지에 대한 판단을 명확하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23) 이에 대해서 汪暉,「中國崛起的經驗及其面臨的挑戰」,『文化縱橫』2010年 第二期에서 상세히 논의하고 있다.

(24) 왕 후이 「충칭사건: 밀실정치와 신자유주의의 권토중래」, 성근제 옮김, 『역사비평』 2012년 여름호. 

(25) 이창휘ㆍ박민희, 앞의 책 000면.

(26) 최근 이러한 논조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해온 학자는 우 징롄(吳敬璉)이다. 그는 "2003년 중공 16기 3중전회에서 채택한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의 개선에 대한 결정」(關於完善社會主義市場經濟體制的決定)을 통해 시장화 개혁을 더 진전시킬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건대 이러한 중앙의 결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더 적극적인 시장화 개혁과 정치체제 개혁을 요구했다. 吳敬璉「強勢政府不是中國經濟取得成功原因」,『中國企業家網』 2013.8.12. 

(27) 신좌파 내에서도 추이 즈위인(崔之元)이 이러한 방향의 논의를 적극적으로 전개해왔다. 그리고 조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도 자본가계급이 중국경제와 사회의 관제고지를 장악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정부가 모든 자본(외국자본, 공공자본, 민간자본)들의 경쟁을 적극 장려하며 시장을 지배의 도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시장경제는 여전히 비자본주의적이며 사회주의적 방향과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반니 아리기 『베이징의 아담스미스: 21세기의 계보』, 강진아 옮김, 길 2009, 458면과 507면.

(28) 張宏良, 앞의 논문. 이 점이 급진적 마오좌파의 불만을 사고 있다. 

(29) 첸 리취과 왕 후이의 사이의 논쟁에 대해서는 이욱연「중국 비판적 지식인 사이의 새로운 분화: 첸리췬과 왕후이의 경우」,『동아연구』00호을 참고.

(30) 錢理群, 앞의 책 316~21면.

(31) 이러한 태도변화에는 중앙아시아와 중동에서 권위주의정부를 무너뜨렸던 소위 '색깔혁명'이 큰 작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러한 사태에 대해 민간부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것으로 대응해오고 있다.
 이남주 성공회대학교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우징롄 中 시장경제학 대부, 보시라이 충칭 모델 비판

우징롄 中 시장경제학 대부, 보시라이 충칭 모델 비판

입력
 
2012-03-26 17:53:11
 
수정
 
2012-03-27 02:45:06
 

중국 시장경제학의 대부인 우징롄(吳敬璉·81·사진)이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의 소위 ‘충칭 모델’에 대해 “법치와 시장경제를 후퇴시키는 반개혁 모델”이라고 비난했다.

26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에 따르면 우징롄은 광저우 링난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보 전 서기의 범죄 소탕은 법치주의를 위반한 것이고 그의 대중주의적 경제정책은 시장경제의 기본원칙과 배치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인기영합적인 정책에는 많은 비용이 따른다”며 “그런 투자는 수익을 가져다주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보시라이는 △국영기업 육성 △임대주택 확대 △범죄집단 소탕 △사회주의사상 고취 등을 적극 추진한 소위 ‘충칭 모델’로 한때 중국 경제 발전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측근인 왕리쥔(王立軍) 충칭시 부시장의 미국 망명 시도 사건으로 실각했다. 우징롄은 “중국의 정치개혁은 법치와 민주주의 그리고 입헌정치 등 3가지에 초점을 맞춰 진행돼야 한다”며 “충칭 모델은 정치개혁과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우징롄은 반면 광둥성 우칸 주민들이 자신들의 대표를 투표로 선출한 ‘민주화 시험’과 선전에서 정부와 관련없는 시민단체의 등록을 허용한 것 등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우징롄은 개혁·개방을 주도한 덩샤오핑의 경제교사로 유명하다.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국무원 경제개혁방안사무실 부주임 등을 맡아 중국 경제개혁의 틀을 만들었다.

그는 “중국의 경제개혁이 늦어지고 있는 것은 뿌리 깊게 만연해 있는 부패 때문”이라며 “국영기업의 과감한 민영화 등을 통해 민간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 보시라이 숙청과 충칭모델의 미래 - KCI 국내학술지 인용색인 ...

    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
    The Purge of Bo Xilai and the Future of Chongqing Model 원문보기 ... [기타자료] - / 2012 / 우징롄 中 시장경제학 대부보시라이 충칭 모델 비판 / 한국경제. 3

야오 양 - 중성국가론 "중국, 평등있는 자유주의로 개혁해야"

야오양(49) 베이징대 교수는 이 대학 국가발전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중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다. 2009년 중국 최고 경제학상인 쑨예팡경제학상을 받았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와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 등에도 활발히 기고하고 있다. 베이징대를 나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

 

기조연설 2 >> 야오양 중국 베이징대 교수

중국은 첫 30년의 사회주의와 30년의 시장화 시대를 거쳐 중국 발전 모델의 3막을 펼쳐야 하는 지점에 도달했다. 무엇보다 중국은 부의 양극화를 해소하지 않고는 지속성장의 발걸음을 떼기 어렵게 되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이지만 웬만한 자본주의 나라보다 더 불공평하다. 도시와 농촌의 소득격차는 3.5배, 업종 간은 10배, 내륙과 연안의 차이는 23배나 된다.


국가 개입 줄이고 능력 발휘할 수 있게
경제·군사적으로 미국과 양강 구도를 꿈꾸고, 우리에겐 가장 큰 교역상대국이자 지정학적으로도 밀접한 중국이 어떤 방향을 잡느냐는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파수꾼 역할을 하는 중국의 지식인들은 시장과 민간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우파와, 국가의 역할을 강화해 문제를 풀자는 좌파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야오양 베이징대 교수는 이 논쟁을 주도하는 스타 논객이다. 그는 지금 중국이 국가와 시장 양면에서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다. 그가 제시하는 처방은 국가가 자의적인 개입은 줄이되, 국민들이 공정하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유로운 사회에는 최소한의 평등이 있어야 하며, 평등이 없으면 자유를 말할 수 없다”고 말하는 평등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자이다.
그는 과도한 금융화에는 부정적이지만, 중국에는 아직도 금융이 ‘포용성장’을 위해 해야 할 역할이 많이 남아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관치와 결탁, 그림자 금융이 활개를 치는 지금의 금융 시스템을 갖고는 인민들이 골고루 잘사는 나라는 요원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낙후한 시스템을 바로잡는 과감한 개혁조처이다.


이익집단과 거리 두는 중성정부 바람직
그가 말하는 바람직한 정부는 ‘중성 정부’다. 이는 이익집단과 거리를 두며 사회의 장기적 이익을 목표로 하는 정부를 말한다. 올해 내내 반부패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시진핑의 새 체제가 그에게는 어떻게 비치는지 그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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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중소득 국가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성장을 계속한 데는 민주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얘기하는 베이징대의 스타 논객 야오양 교수(국가발전연구원장)다. 초기 박정희의 개발방식을 높이 평가하는 그는 지금 중국의 심각한 재분배 난조와 불평등 문제를 호되게 비판하면서도 중국식 ‘중성정부’가 이끄는 개발국가론을 기본적으로 긍정하는, 이념적 스펙트럼이 친후이와 추이즈위안의 중간쯤에 있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