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List

2014년 7월 31일 목요일

심경집의(心經集義) 제2권(卷之二) 성의(誠意) 1절(1節) 중용 천명지위성장 상절(中庸天命之謂性章上節)]

심경집의(心經集義) 제2권(卷之二) 경(經)원문  원문이미지  새창띄우기
확대 원래대로 축소
 성의(誠意) 1절(1節)
[중용 천명지위성장 상절(中庸天命之謂性章上節)]

《중용》에, “하늘이 명(命)한 것을 성(性)이라 이르고, 성(性)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이르고,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 이른다. 도라는 것은 잠깐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이니 떠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보지 아니하는 데서 경계하며 삼가하고 그 듣지 아니하는 데서 두려워한다. 숨은 것보다 더 보이는 것이 없으며 미세(微細)한 것보다 더 나타남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 있을 때에 삼가하느니라.” 하였다.
《대학(大學)》에, “이른바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하라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는 것이다. 나쁜 냄새를 싫어함과 같이 하며 좋은 색을 좋아함과 같이 하는 이것을 스스로 쾌하다 하는 것[自謙]이니,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 있을 때에는 삼가하느니라. 소인이 혼자 있을 때에는 착하지 않은 짓을 함이 이르지 않음이 없다가 군자를 보면 시치미를 떼고 그 착하지 않은 것을 감추고 그 착한 것을 나타내나, 사람들이 그를 볼 때에 폐간(肺肝)을 보는 듯하니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이것은 속에서 정성스러우면 밖에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군자는 그 홀로 있을 때에 삼가한다. 증자(曾子)가 이르기를, ‘열 눈의 보는 바이며 열 손의 가리키는 바이니 엄하도다.’ 하였다. 부(富)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하나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편안하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하나니라.” 하였다.
《전습록(傳習錄)》에, “조금이라도 협잡이 있기 시작하면 문득 좋은 색을 좋아하며 나쁜 냄새를 싫어하는 마음이 아니다.” 하였고, 또 “조금이라도 딴 생각이 걸렸으면 곧 반드시 성인이 되려는 뜻이 아니다.” 하였다.
집의(集義) 이윤(伊尹)이 함유일덕(咸有一德 《서경》 편명)을 지어 이르기를, “덕이 한결같으면 움직이는 것이 길(吉)하지 아니함이 없고 덕이 두 가지, 세 가지면 움직임이 흉하지 않음이 없다.” 하였고, 또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한결같아야 이에 날로 새로워진다.” 하였다. 상서(商書) 서산 진씨(西山眞氏)가 말하기를, “착함에 순수하지 못하고 인욕(人欲)이 섞이어 착함에 항상하지 못하여 인욕이 간단(間斷)시키면 그 덕이 두 가지, 세 가지로 되어 움직임이 흉한 것이 아님이 없다. 《주역》에, “날로 새로움으로써 성(盛)한 덕이라.” 하였는데,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사람의 학(學)이 날로 나아가지 않으면 날로 물러간다. 그러므로 덕은 날로 새롭게 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날로 새롭게 못하는 자는 한결같지 못함이 방해한 까닭이다.” 하였다. 또 함유일덕(咸有一德)에 이르기를, “덕은 항상한 스승이 없고 착함을 주(主)하는 것이 스승이 되며 착함은 항상한 주(主)함이 없고 능히 한결같이 하는 데에 맞춘다.” 하였다. 아래에 보인다.
공자가 이르기를, “군자가 인(仁)을 버리면 무엇으로 이름을 이루리오. 군자는 밥 한 끼 먹을 동안에도 인을 어기지 못할 것이니, 창졸한 때에도 반드시 이(是 인(仁))에 하며, 엎어질 때에도 반드시 이에 할지니라.” 하였다. 이인(里仁)
정자가 말하기를, “공자가 이익[利]을 드물게 말하는 것은 다만 재리(財利)의 이(利)만이 아니라 무릇 이(利)할 마음이 있으면 곧 불가(不可)하니 한 가지 일을 하는 데에 모름지기 자기의 편리한 것을 찾음이 모두 이심(利心)이다. 성인은 의(義)로써 이(利)를 삼아서 의(義)의 편안한 곳이 곧 이(利)가 되는 것이다.” 석씨(釋氏)의 학은 모두 이(利)에 근본하였으므로 곧 옳지 않은 것이다.
○ 맹자가, 순(舜)과 도척(盜跖)의 분별을 말하는 데 다만 의(義)와 이(利)와의 사이에 있다 하였다. 사이라는 말은 서로 심히 멀지 않은 것으로서 틀리는 것이 털끝만하다는 것이다. 의와 이는 다만 공(公)과 사(私)일 뿐이다. 겨우 의에서 벗어나면 곧 이(利)로써 말하는 것이니 다만 계교(計較)함이 곧 이해(利害)가 있음이 된다. 만약 이해(利害)가 없다면 무엇 때문에 계교하랴. 이해라는 것은 천하의 보통 생각이므로 사람들이 모두 이익을 취하고 손해를 피한다. 성인은 다시 이해를 논하지 아니하고 오직 의(義)에 당연히 할 것과 아니할 것을 보나니 곧 명(命)이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남당공(南贛公)이 말하기를, “진실로 다하지 못한[不盡] 마음이 없으면 스스로 난처할 일이 없다.” 하였다.
정자가 말하기를, “현자(賢者)는 오직 의를 알 뿐이니, 명(命)이 그 가운데 있고 중인(中人) 이하는 명(命)으로써 의(義)에 처한다. 현자 같으면 도로써 구하며 의로써 얻고 명을 반드시 말하지 아니한다.” 하였다.
○ 사람이 환란(患難)에 있어서는 다만 한 가지의 처치가 있으니 사람의 계책을 다한 뒤에 모름지기 태연히 처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한 가지 일을 만나면 마음과 마음, 생각과 생각에 놓지를 못하나니 필경에 무슨 유익함이 되는가? 만약 처치하고는 내버릴 줄을 모르면 곧 이것은 의가 없고 명(命)이 없다는 것이다.
○ 문인(門人)이 고향에 돌아가 향거(鄕擧)를 보려는 자가 있었으니 그것은 고향에 가서 응시(應試)하는 것이 합격하기에 쉽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선생이 이르기를, “너의 이 마음이 벌써 요순(堯舜)의 도에 들어가지 못하겠다. 대저 자공의 높은 식견으로 어찌 재리(財利)에 규규하였을까마는 다만 넉넉하고 부족한 거기에 마음을 두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요, 또 가난함과 부자됨이 명이 있는 것인데, 그가 그사이에 마음을 두었으니 도를 믿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성인이 그를, 명을 순하게 받지 아니한다고 하셨으니, 도에 뜻을 둔 자는 마땅히 이 마음을 버린 뒤에라야 더불어 도를 말할 수 있느니라.” 하였다.
○ 사람이 진실로 아침에 도를 듣고는 저녁에 죽어도 가하다는 뜻이 있으면 하루라도 편안히 하지 못할 곳에 즐거이 편안히 하려고 않는 것이다. 어찌 하루뿐이랴! 잠깐도 되지 않는 것이 증자(曾子)가 대자리를 바꾸어 까는 것[易簣]같은 것이 그렇게 하여야만 편안히 하는 것이다. 사람이 이와 같이 못하는 이는 다만 실리(實理)를 보지 못한 것이다. 실리라는 것은 실지로 옳은 것을 보고 실지로 그른 것을 본 것이다. 무릇 실리를 마음에 얻은 것은 자별(自別)하니 귀로 듣기만 하고 입으로 말하기만 하는 자는 마음으로는 실로 보지 못한 것이다. 만약 실로 보았다면 반드시 편안히 하지 못할 바에 즐거이 편안히 하지 못할 것이다. 마음에 얻는 것을 덕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억지로 힘쓰기를 기다리지 아니한다. 그러나 학자는 모름지기 억지로 힘써야 할 것이다. 옛사람이 몸을 죽이는 자고 있으니 만약 실지로 보지 못했다면 어찌 능히 이와 같이 하리오. 모름지기 실지로 사는 것이 의보다 중하지 아니하고 사는 것이 죽음보다 편안하지 않다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몸을 죽여 인(仁)을 이루는 이가 있으니 다만 한 개의 옳은 것을 성취할 뿐이다.
집의(集義) 《대학》에, “군자가 큰 도가 있으니 반드시 충신을 얻고 교만함과 방종함을 잃느니라.” 하였다.
공자가 이르기를, “충신(忠信)을 주(主)하며 자기와 같지 아니한 자와 벗하지 말 것이니라.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아니할 것이니라.” 하였다.
○ 공자가 이르기를, “제자(弟子)가 들어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어른에게 공손하고 삼가하고 신실하며 여러 사람을 널리 사랑하되 인(仁)한 이를 친할 것이니, 행실을 하고 남은 힘이 있거든 문(文)을 배울지니라.” 하였다. 증자가 말하기를 “내가 날로 내 몸을 세 번 반성하노니 남을 위해 인을 꾀하는데 충(忠)하지 못했는가? 벗으로 더불어 사귀는데 신(信)하지 못했는가? 스승의 전(傳)한 것을 익히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다.” 하였다.
○ 맹자가 말하기를, “사람을 사랑해도 친해지지 아니하거든 나의 인(仁)에 돌이켜 보며, 사람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아니하거든 나의 지(智)에 돌이켜 보며, 사람에게 예(禮)를 하여도 답하지 아니하거든 나의 공경함에 돌이켜 보라. 행하여 얻지 못함이 있거든 모두 자기에 돌이켜 볼 것이다.” 하였다. 또 말하기를, “군자는 인(仁)으로써 마음을 존(存)하며 예(禮)로써 마음을 존한다. 군자는 반드시 스스로 돌이켜 보아서 내가 반드시 인(仁)하지 못하였구나 반드시 예가 없었구나 또 내가 반드시 충신(忠信)하지 못하였구나 하여 인(仁)이 아니면 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것이니라.” 하였다. 이루(離婁) 상(上) 하(下)
《상서(商書)》 주관(周官)에, “지위는 교만하기를 기약하지 아니하며 녹(祿)은 사치하기를 기약하지 아니하고 공손함과 검소함이 오직 덕이니, 너의 거짓을 하지 말라. 덕을 지으면 마음이 편안하여 날로 아름답고 거짓을 지으면 마음이 괴로워서 날로 졸(拙)하니라.” 하였다. 맹자가 말하기를, “공손한 자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아니하며 검소한 자는 남의 것을 빼앗지 아니하니 공손과 검소를 어찌 음성과 웃는 얼굴로 할 것이냐?” 하였다. 《시(詩)》 소민(小旻)에, “전전(戰戰)하며 긍긍(兢兢)하여 깊은 못에 다다름과 같이 하며 엷은 얼음을 밟는 것같이 하라.” 하였다. 《상서(商書)》 군아(君牙)에, “마음이 걱정되고 위태로움이 범의 꼬리를 밟는 것같이 하며 봄 얼음을 건너는 것같이 하라.” 하였다.
집의(集義) 만장의 물음에 대하여 맹자가 말하기를, “공자의 말에 ‘중도(中道)인 사람을 얻지 못할진댄 반드시 광(狂)한 자와 견(狷)한 자일진져! 광(狂)한 자는 진취(進取)하고 견(狷)한 자는 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하였다. 그 뜻이 고상하고 커서 옛사람 옛사람 하지마는 그 행실을 상고해 보면 말을 덮지 못하는 것이다. 공자의 말에, ‘나의 문전을 지나면 들어오지 않아도 내가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는 자는 오직 향원(鄕愿)이다. 향원은 덕의 도적이다’ 하셨느니라.” 하였다. “어떤 것을 향원이라 합니까?” 하니, “어찌 그다지 고상하고 커서 말이 행실을 돌아보지 못하고 행실이 말을 돌아보지 못하면서 말로는 옛사람 옛사람 한다. 그러나 행실은 어찌 외롭게 살리오. 이 세상에 나서 이 세상 사람이 되어서 착하다 하면 된다 하여 가만히 사람들에게 기쁨을 사기만 하는 것이 이것이 향원이다.” 하였다. 만장(萬章)이 말하기를, “한 고을 사람이 모두 향원 사람이 이르면 간 데마다 근신한 사람이 되지 않음이 없는데 공자는, ‘향원은 덕의 도적이다.’ 함은 어쩐 까닭입니까?” 하니, “그르다 하려 해도 지적할 거리가 없으며 나무라려 하여도 나무랄 것이 없어 시속에 혼동하고 더러운 세상에 합하여 거(居)하는 것은 충신(忠信)한 것 같고 행하는 것은 청렴하고 깨끗한 것 같다. 여러 사람이 다 좋아하게 하여 스스로 옳다고 하나 요순(堯舜)의 도에 더불어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덕의 도적이라 할 것이다. 군자는 정상(正常)한 데로 돌이킬 뿐이니 정상하게 되면 뭇 백성이 흥기되고 뭇 백성이 흥기되면 사특(邪慝)함이 없느니라.” 하였다. 진심(盡心) 하(下)
맹자가 말하기를, “이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능히 천승(千乘)의 나라를 사양하되 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면 한 바구니의 밥과 한 그릇의 국에도 안색에 나타내느니라.” 하였다. 진심(盡心) 하(下) 또 말하기를, “중자(仲子)는 불의(不義)한 것이라면 제국(齊國)을 주어도 받지 않을 것을 사람들이 다 믿으나 이것은 한 바구니의 밥과 한 그릇의 국을 사양하는 작은 의(義)다. 그 작은 것을 가지고 큰 것을 믿는다면 어찌 옳겠는가?” 하였다. 진심(盡心) 상(上)
정자가 말하기를, “학이란 모름지기 실지를 힘써서 이름에 가깝지 아니하여야 바야흐로 옳은 것이다. 이름을 가까이 할 뜻이 있으면 이것은 거짓이다. 큰 근본이 이미 잃어졌는데 다시 무슨 일을 배우랴. 이름을 위하는 것이 이익을 위하는 것과 맑고 탁한 것은 비록 같지 않으나, 그 이심(利心)은 한 가지이다.” 하였다.
진서(秦誓)에 이르기를, “만약 한 개의 신하가 진실하여 다른 재주는 없어도 그 마음이 넓어서 남의 재주 있는 것을 자기가 가진 것같이 생각하고 남의 아름답고 어진 것을 그 마음에 좋아하기를 자기의 입에서 나온 것처럼 생각할 뿐이 아닌 이가 있으면 실로 능히 용납하여 능히 나의 백성과 자손을 보존할 것이니 거의 이익이 있으리라. 사람의 재주 있는 것을 질투하여 미워하고 남의 아름답고 어진 것을 어기어서 통하지 못하게 하면 실로 용납하여, 우리 자손과 백성을 또한 보전할 것이니, 또한 위태롭다.” 하였다. 주서(周書) 《대학(大學)》 명도선생이 한 가지 착한 것으로써 이름을 이루지 아니하고 일시의 이로움으로써 자기의 공을 삼지 아니하였다. 아래에 나온다.

[주D-001]증자(曾子)가 대자리를 바꾸어 까는 것[易簣] : 증자(曾子)가 병이 중할 때에 깔았던 대자리[簣]를 바꾸라 하였다. 그것은 계손(季孫)에게서 선사를 받은 것인데, 너무 화려한 자리였다. 그의 아들이 말하기를, “병이 위중하시니 지금은 변동할 수 없고 내일 아침에나 바꾸겠습니다.” 하니, 증자는 “나는 무엇을 구하겠는가? 바르게 죽으면 그만이다.” 하고 자리를 바꾸자 곧 운명하였다.
[주D-002]중자(仲子) : 오릉중자(於陵仲子)인데 청렴하기로 이름이 있었다.
[주D-003]불의(不義)한 것이라면 …… 작은 의(義)다. : 《맹자》의 본문에는 이 사이에 “그러나 중자가 형의 밥을 불의(不義)한 밥이라고 먹지 않고 어머니를 피하여 아내와 함께 오릉(於陵)에 가서 사는 것은 인륜(人倫)에 큰 죄를 얻은 것이니” 하는 구절이 있다.
[주D-004]진서(秦誓)에 이르기를, …… 위태롭다.” 하였다. : 《대학》에서 주서를 인용한 말이다.

2014년 7월 30일 수요일

대동(大同)과 소강(小康)에 대하여.

대동(大同)과 소강(小康)에 대하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길을 걸어왔겠지만, 특히 중국의 고대역사는 크게 대동(大同)과 소강(小康) 그리고 혼란기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대동(大同)과 소강(小康)의 개념을 명확하게 파악해야만이 공자의 궁극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동(大同)과 소강(小康)은 과연 어떤 의미를 함축하고 있을까?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대동제(大同祭)”나 “대동단결(大同團結)” 혹은 “소강상태(小康狀態)”나 “소강국면(小康局面)”에 접어들었다는 표현을 쓰고는 한다. 중국에서는 덩샤오핑(鄧小平) 전 주석이 3단계 발전론을 제시한 이래, “대동”과 “소강”은 중국 사회의 발전 과정을 대변하는 상징어로 자리를 잡았는데, 1단계는 국민들이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는 “원바오(溫飽) 단계”, 2단계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기반으로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소강”을 말하며, 3단계는 만인이 평등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 건설의 완성 즉 “대동”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이러한 “대동”과 “소강”은 본디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이는 [예기]의 <예운(禮運)>편에 기록된 공자와 그의 제자 자유(子游)의 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공자의 제자 자유 (표지그림 참조) 
출처: http://blog.daum.net/sixgardn/15770370 

예전에 공자가 납빈 즉 신들의 가호에 보답하기 위해 올리던 제사에 참여했다. 일이 끝나고 누각에 올라 둘러보고는 길게 탄식을 하였는데, 공자가 탄식한 것은 아마도 노나라를 한탄한 것이리라. 자유가 곁에 있다가 그 모습을 보고는 말했다. “스승께서는 어찌하여 탄식하십니까?” 이에 공자가 말했다. “큰 도가 실행될 때와 하(夏) 상(商) 주(周) 삼대의 훌륭한 인물들이 정치를 하던 때는, 내가 그 시절에 미칠 수는 없으나 기록이 남아있어 알 수 있다. 큰 도(大道)가 실행되던 때는, 세상이 공천하(公天下)였으니, 어질고 재능 있는 이들을 선발하고, 신용을 중시하며 화목함을 갖췄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어버이만이 어버이가 아니었고, 자신의 자식만이 자식이 아니었다. 또한 노인들로 하여금 귀속되는 바가 있게 하였고, 장년은 쓰임이 있었으며, 어린이들은 키워짐이 있었고, 늙어 부인이 없는 이, 늙어 남편이 없는 아낙, 부모 없는 아이, 자식이 없는 노인, 장애인들이 모두 부양받는 바가 있었다. 사내에게는 그에 적합한 직분이 있었고, 아낙은 시부모님이 계시는 시가가 있었다. 재물은 땅에 버려지는 것을 싫어하였으니 지니고 싶어 하였지만 반드시 자기가 소유하지는 않았고, 힘은 자기 몸에서 나오지 않음을 싫어하여 자신이 직접 힘을 쓰려고 하였지만, 꼭 자신을 위해서만 힘쓰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계략과 술수가 막혀 일어나지 못하고, 도적이나 반란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그러므로 밖의 대문을 잠그지 않았다. 이를 대동이라고 일컫는다. 

오늘날에는 큰 도가 사라졌으니, 세상이 가천하(家天下)가 되었다. 각각 자신의 어버이만이 어버이가 되고, 자신의 자식만이 자식이 되었으며, 재물과 힘은 자신을 위해 썼다. 천자와 제후들은 세습하는 것을 예의로 여겼고, 성곽을 쌓고 그 주변에 못을 파서 공고히 함으로써 적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예의로 기강을 삼았으니, 그럼으로써 군신관계를 바로 하고, 부자관계를 돈독히 하였으며, 형제간에 화목하게 하고, 부부 사이를 조화롭게 하였다. 또한 제도를 설치하고, 밭을 구획하였으며, 그럼으로써 용감하고 지혜로운 자를 존중하고, 자기가 세운 업적을 자기의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권모술수가 이때부터 흥기하고, 전쟁이 이때부터 발생하였다. 하(夏)나라 우(禹)임금과 상(商)나라 탕(湯)임금, 주(周)나라 문왕(文王)과 무왕(武王) 성왕(成王) 그리고 주공(周公)은 이러한 예의로 시비를 구별하였다. 이 여섯 군자들은 예의에 삼가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그럼으로써 그 의로움을 분명히 하고, 그 신의를 깊이 헤아렸으며, 허물을 드러내고, 형벌과 어질음을 꾀하고 꾸짖어, 백성들에게 항상 그러함을 보여주었다. 만약 이를 따르지 않는 이들이 있다면, 권세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물리쳐 대중들이 재앙으로 삼았다. 이를 일컬어 소강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대동사회라 함은 중국역사의 시작인 삼황오제(三皇五帝) 즉 복희씨(伏羲氏)와 여와씨(女媧氏) 그리고 신농씨(神農氏)의 삼황과 황제(黃帝), 전욱(顓頊), 제곡(帝嚳), 제요(帝堯), 제순(帝舜)의 오제가 통치하던 시기를 일컫는데, 이때는 인재를 선발하여 넘겨주는 선양제(禪讓制)를 통해 왕위를 계승했다. [사기]를 집필한 사마천(司馬遷)은 이 중에서 “삼황”의 존재를 전설로 보아 실존 인물이었다는 점에 대해서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오제”로부터 역사를 기술하게 되는데, 일설에 따르면 복희씨는 팔괘(八卦)라는 문자를 만든 인물로 중화민족의 시조로 여겨지고 있고, 여와씨는 복희씨의 여동생으로 새끼줄에 진흙을 묻혀 땅에 뿌리자 그 진흙 방울들이 사람으로 변했다고 한다. 이 복희씨와 여와씨는 암수 한 몸으로 용 혹은 뱀의 하반신을 하고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따라서 중국인들은 복희씨와 여와씨를 함께 중화민족의 시조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복희씨와 여와씨 
 

이 그림을 통해서 복희씨와 여와씨는 아마도 용 혹은 뱀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의 족장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데,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막연하게나마 상고(上古)시대에 이미 생명이란 반드시 남녀 한 쌍을 통해서 잉태된다는 과학적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신농씨 
 

또한 신농씨는 농업을 최초로 보급한 인물로 알려졌는데, 그는 온갖 식물을 직접 먹어보아서 먹어도 되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될 것을 구별했기 때문에, 그 독성으로 인해 외모가 일그러진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으니, 위의 그림처럼 꼭 도깨비처럼 생긴 신농씨가 어떻게 백성들을 이끄는 임금으로 추대될 수 있었냐는 것이다. 

신농씨는 그가 먹어왔던 식물들의 독성으로 인해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고 또 그로 인해서 외모가 일그러졌지만, 사람들은 그의 희생 덕분에 어떤 식물을 먹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떤 곡물을 심어서 재배해야 할지를 알 수 있었다. 즉 백성들의 윤택한 삶을 위해서 자기 한 몸을 희생한 신농씨에게, 어느 누가 그를 못생겼다고 아니 도깨비처럼 생겼다고 무서워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오히려 그를 보면 진심으로 자기의 지도자로 섬기고 따르려고 하는 마음이 우러나지 않겠는가? 

여기서 특기할 만한 사실은, 당시의 대동사회에서는 바로 “선양제”라는 것을 통해서 지도자를 선출했다는 점인데, 이와 관련하여서는 먼저 [사기] <오제본기(五帝本紀)>의 태평성대를 이룬 요순(堯舜) 임금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요임금이 말했다. “아, 사악(四嶽)이여! 짐이 재위한 지 이미 70년인데, 그대는 천명을 변치 않게 할 수 있으니 짐의 자리에 오르시오.” 이에 사악이 대답했다. “덕이 낮아 임금 자리를 욕되게 할 것입니다.” 그러자 요임금이 말했다. “귀족이거나 관계가 먼 사람 숨어 사는 사람 모두를 천거해 주시오.” 이에 모두가 요임금에게 말했다. “민간에 홀아비가 있는데, 순이라 합니다.” 요임금이 말했다: “그러한가, 짐은 그에 대해 들었소. 그는 어떠하오?” 사악이 말했다: “장님의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완고하고 어머니는 간사하며 동생은 교만하지만, 능히 온화하게 부모님을 섬기고 나아가 수양하니 어지러움에 이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요가 말했다. “내가 그를 시험해보겠소.” 이에 요는 두 딸을 그에게 시집보내어, 두 딸에게서 그의 덕을 살폈다. 순이 역산(曆山)에서 농사를 짓자 사람들이 모두 밭을 양보했고, 뇌택(雷澤)에서 낚시를 하자 사람들이 모두 자리를 양보하였으며, 황하 가에서 그릇을 구우니 그릇이 모두 이지러지지 않았다. 1년이 되자 머무르는 곳이 무리를 이루었고, 2년이 되자 고을을 이루었으며, 3년이 되자 도시를 이뤘다. 

요임금은 성스럽다고 여겨서, 순을 불러 말했다. “그대는 일을 도모하여 완성했고, 자신이 공언한대로 이룬지 3년이 되었다. 그대가 제위에 오르라.” 이에 순은 덕을 쌓지 못했다며 사양했다. 하지만 요임금은 아들 단주가 못나고 어리석어 세상을 넘겨주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정권을 순에게 주었다. 순에게 주면 곧 세상이 이로움을 얻고 아들 단주가 원망을 하지만, 단주에게 주면 곧 세상이 원망하고 단주 혼자만이 이로움을 얻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에 요임금이 말했다. “결국에는 세상이 원망함으로써 한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없다”, 그러고는 마침내 세상을 순에게 주었다. 요임금이 죽고 3년상이 끝나자, 순은 단주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남하(南河)의 남쪽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제후 중에 조정에 알현하는 이들이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갔고, 소송을 하는 이들이 단주에게 가지 않고 순에게 갔으며, 칭송하는 이들이 단주를 칭송하지 않고 순을 칭송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순이 “운명이로다!”라고 말하고, 중원으로 돌아가 천자의 자리에 올랐으니, 이가 순임금이다. 

소위 대동사회의 “선양제”란 이처럼 무조건적으로 왕위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인재를 추천받아 그의 자질과 능력을 충분히 검증해 본 후에 물려주는 제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보면, 오늘날의 중국 주석제(主席制)는 “선양제”와 닮은 구석이 있다. 행정적 자질을 끊임이 없이 검증하고, 그러한 다년간의 경험과 업적을 근거로 국가를 이끄는 주석으로 선출하는 중국 체제의 현주소는, 분명 “선양제”를 막연하게나마 배워나가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이와 별개로, 중국 최초의 통일 왕조인 진나라의 시황제가 자신의 업적을 이와 같은 삼황오제와 견줄 만하다고 여겨, 스스로에게 “삼황”의 “황”과 “오제”의 “제”를 합친 “황제(皇帝)”의 호칭을 최초로 사용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반면에 제순(帝舜) 즉 순(舜)임금에게서 왕위를 선양받은 우(禹)임금 이후로는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세습제가 시작되었는데, 이것이 소강사회의 시작이다. 

아들 계가 어질어, 능히 우임금의 도를 계승할 수 있었다. 우임금이 일찍이 익을 하늘에 천거했는데, 노래를 하는 사람과 조정에 알현하러 오는 이들이 익에게 가지 않고 계에게로 가서 말했다. “우리 임금의 아들이다.” 이에 계가 마침내 임금이 되었다. [십팔사략] <하왕조편(夏王朝篇)>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세습제”의 시작은 우임금의 의도가 아니었으니, 이 역시 당시의 분위기상 피할 수 없었던 숙명이나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위에서 소개한 바 있는 대동과 소강의 개념에서, 다음의 밑줄 친 부분을 다시 한 번 살펴 보기로 하자. 

하(夏)나라 우(禹)임금과 상(商)나라 탕(湯)임금, 주(周)나라 문왕(文王)과 무왕(武王) 성왕(成王) 그리고 주공(周公)은 이러한 예의로 시비를 구별하였다. 이 여섯 군자들은 예의에 삼가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그럼으로써 그 의로움을 분명히 하고, 그 신의를 깊이 헤아렸으며, 허물을 드러내고, 형벌과 어질음을 꾀하고 꾸짖어, 백성들에게 항상 그러함을 보여주었다. 

즉 소강이란 지도자가 예(禮)와 의(義) 그리고 신(信)으로 솔선수범을 보이고, 그렇지 못하면 형벌(刑)과 어질음(仁)으로 통제한 사회를 뜻하니, 다음 장부터는 이를 바탕으로 공자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바가 무엇이었는지 하나하나 설명하고자 한다. 

대동사회 vs 소강사회

소강사회에 대해 알아보기
 대동사회 = 선양제,  성인
 소강사회 = 세습제,  군자
=============================================================================
대동사회는 요순(堯舜) 임금
이 다스리는 사회를 뜻하고, 소강사회는 우(禹)·탕(湯)·문왕(文王)·무왕(武王)·성왕(成王)·주공(周公)이 다스리던 시대를 뜻한다. 요순이 다스리는 무위지치(無爲之治)보다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살 만한 세상이다. 자유(子游)에게 대동사회의 모습을 설명한 공자는 이어서 소강사회의 모습을 설명한다. 공자는 “지금은 대도(大道)가 모습을 감추니 천하는 자기 집안의 것이 되었다”고 한탄했다.

 이 부분이 대동과 소강의 가장 큰 차이다. 대동사회는 천하가 공공을 위하는 천하위공(天下爲公) 사회라면 소강사회는 천하가 자기 집안을 위하는 천하위가(天下爲家) 사회였다. 공자는 소강사회는 자기 어버이만을 어버이로 여기고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며 재화와 힘을 자기만을 위해 쓴다고 말했다. 천자나 제후 같은 대인(大人)들은 자리를 세습하는 것을 예(禮)로 삼고, 성곽과 해자(垓字)를 파서 스스로 굳게 지키는 사회다.

 그러나 소강사회도 그럭저럭 살 만한 사회로 보았다. 공자는 그 이유를 “예의를 벼리로 삼아서(禮義以爲紀), 군신(君臣) 사이가 바르게 되고, 부자(父子)가 돈독하게 되고, 형제가 화목하고 부부가 조화를 이룬다”고 말했다. 우·탕·문왕·무왕·성왕·주공 여섯 군자(君子)는 예(禮)를 삼가지 않은 이가 없어서 의(義)가 드러나고, 믿음이 이루어졌는데, 공자는 “만약 이를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집권자라도 백성들로부터 재앙으로 여겨져서 쫓겨났다”면서 “이를 일러 소강(是謂小康)”이라고 한다고 『예기(禮記)』 ‘예운(禮運)’ 편에서 말했다.

[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소강사회,   [중앙일보] 입력 2012.02.10


---------------------------------------------------------------------------------------------------
춘추시대라는 엄청난 혼란기를 살아가던 공자에게 있어서, 대동은 과연 어떠한 존재로 다가왔을까?
(우 임금이) 밖으로 나가다가 죄인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묻고는 울며 말했다: “요순시절의 사람들은, 요순임금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았는데, 과인이 임금이 되고는, 백성들 각자 그들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으니, 과인이 그것을 애석히 여긴다.” [十八史略(십팔사략)] <夏王朝篇(하왕조편)>
정말로 그간의 주장대로, 공자는 진정 대동사회로의 복귀를 주장했을까? 아니면 대동을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영원한 이상향 즉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으로 남겨두고, 현실적으로 회복 가능한 차선의 선택 즉 규율을 만들어서 먼저 지도자들이 솔선수범하고 나아가 그것으로 백성들을 통제하는 소강사회를 주장했을까? 이미 앞에서 누차 설명한 바대로, 공자는 사회의 안정을 위해서 예악(禮樂)제도와 인(仁), 의(義)를 따라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한다. 따라서 공자가 대동사회로의 복귀를 외쳤다는 것은 사실상 편협한, 아니 엄밀히 말해서 대단히 잘못된 시각인 것이다.

큰 도가 실행될 때와 하(夏) 상(商) 주(周) 삼대의 훌륭한 인물들이 정치를 하던 때는, 내가 그 시절에 미칠 수는 없으나 기록이 남아있어 알 수 있다. 큰 도(大道)가 실행되던 때는, 세상이 공천하(公天下)였으니, 어질고 재능 있는 이들을 선발하고, 신용을 중시하며 화목함을 갖췄다. (생략) 이를 대동이라고 일컫는다.
오늘날에는 큰 도가 사라졌으니, 세상이 가천하(家天下)가 되었다. 각각 자신의 어버이만이 어버이가 되고, 자신의 자식만이 자식이 되었으며, 재물과 힘은 자신을 위해 썼다. (생략) 하(夏)나라 우(禹)임금과 상(商)나라 탕(湯)임금, 주(周)나라 문왕(文王)과 무왕(武王) 성왕(成王) 그리고 주공(周公)은 이러한 예의로 시비를 구별하였다. 이 여섯 군자(君子)들은 예의에 삼가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그럼으로써 그 의로움을 분명히 하고, 그 신의를 깊이 헤아렸으며, 허물을 드러내고, 형벌과 어질음을 꾀하고 꾸짖어, 백성들에게 항상 그러함을 보여주었다. 만약 이를 따르지 않는 이들이 있다면, 권세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물리쳐 대중들이 재앙으로 삼았다. 이를 일컬어 소강이라고 한다. [예기(禮記)] <예운(禮運)>

공자의 도(道)는 태평성대를 이끈 옛 성현들의 통치이념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는데, 이제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기로 하자.
진실함은 하늘의 도이고, 진실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 진실한 사람은 힘쓰지 않아도 중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얻게 되어, 차분하게 도에 들어맞는 것이니, 성인이다. 진실하게 한다는 것은, 선을 가리어 굳게 잡는 것이다. [禮記(예기)] <中庸(중용)>
이는 도라는 것이 바로 진실함에 있는데, 진실함이란 스스로 진실한 것과 또 진실하게 하는 두 가지의 것이 있다는 의미이다. 즉 하늘의 도는 억지로 작위하지 않고 스스로 그러하게 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순리임에 반해서, 사람의 도는 노력하고 절제하여 작위(作爲)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공자는 도를 다시 하늘의 도인 천도(天道)와 사람의 도인 인도(人道)로 나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이와 관련하여 또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자.
공자가 애공를 모시고 앉았다. 애공이 말하길: “감히 묻습니다. 사람의 도는 누구를 큰 것으로 여기오?” 공자가 엄정하게 낯빛을 고치고는 대답하여 이르길: “임금께서 이 말씀에 이르신 것은 백성들의 덕입니다. 진실로 신은 감히 사양치 않고 대답하겠습니다. 사람의 도는 정치를 큰 것으로 여깁니다.” (애)공이 말하기를: “감히 묻겠는데 어떤 것이 정치를 한다고 일컫는 것이오?” 공자가 대답하여 이르길: “정치는, 바로잡는 것입니다. 임금이 바르게 하면, 곧 백성들이 정치에 따릅니다. 임금의 행하는 바는, 백성들의 따르는 바입니다. [禮記(예기)] <哀公問(애공문)>
다시 말해서, 인도(人道)란 “바로잡는 것”이니 바로 예악제도로 절제하고 통제하는 소강사회의 통치이념을 뜻하는 반면, 천도(天道)는 “스스로 그러한 것”이니 하늘이 부여한 천성에 따르는 대동사회의 통치이념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도 공자는 당시 춘추시대라는 혼란기를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는데 있어서, 대동이 아닌 인의(仁義)와 예악제도(禮樂制度)를 강조하는 소강사회로의 복귀를 외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논어]에서도 언급되듯이 공자는 “하늘”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으니, 그 이유를 이제 막연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동사회와 소강사회의 도에 대해서 정리해보기로 하자. 대동사회는 어느 누구한테도 배우지 않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도(道)를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몸에 받아들여 실천한 성인들이 통치한 국가형태를 일컫는다. 따라서 성인들의 도(道)인 대동의 통치이념에는 강함과 부드러움을 조화롭게 실천하는 덕(德),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이고도 공정하게 판단하는 중(中), 선(善)한 것만 택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들을 포용하여 함께 이끌고 가려는 상생과 공생의 화(和), 지도자가 솔선수범하여 희귀한 것을 탐내지 않는 검소함(검: 儉), 따듯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자애로움(자: 慈) 그리고 감히 백성들의 앞이나 위에 서서 군림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밑에 처하며 백성들의 뜻을 지도자의 뜻으로 삼으려고 하는 불감위천하선(不敢爲天下先)의 겸손함(겸: 謙)이 그 구성요소들로 내재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자세로 통치하면 그 궁극의 이상향인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동사회의 도와 그 구성요소들에 대해서는 사실상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대단히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보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필자의 노자 [도덕경] 해설서들을 참고할 수 있다.
반면 소강사회는 비록 성인과 같이 태어나면서부터 도를 이해하고 실천한 인물은 아니지만 옛 성인의 도를 온전하게 배우고 부단히 노력하여 실천한 군자들이 통치한 국가형태를 일컫는다. 따라서 군자의 도(道)인 소강의 통치이념은 원칙적으로 상술한 대동사회의 통치이념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서 따르는데, 바로 여기서 대동과 소강의 연관성을 이해할 수 있으니, 소강의 통치이념은 기본적으로 대동의 통치이념을 그대로 흡수하여 계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백성들의 마음에 이미 이기주의가 깊숙이 자리 잡기 시작한 시대에, 이러한 원칙적인 대동의 통치이념만으로는 백성들과 나라를 안정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스스로 진실한” 대동의 통치이념에 나아가 “진실하게 하는” 노력과 절제의 작위(作爲)인 사람의 도를 더해야 만이 백성들과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의 도를 이루는 핵심 구성요소가 다름 아닌 어질음의 인(仁)과 의로움의 의(義) 그리고 예(禮)와 악(樂)의 제도인 것이다.
공자는 성인이 통치하는 대동사회를 꿈꿨고, 또 자신의 뜻이 좌절될 때마다 상처받은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 그러한 대동을 그리워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춘추시대와 같은 혼란스러운 난세에서 대동은 그저 어디까지나 이상향일 뿐, 다시(혹은 당장) 회복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공자는 춘추시대와 같은 난세의 상황에서는 소강사회로의 복귀가 최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대동의 사회라는 것은 우선 소강사회를 회복하고 나서 다시 고려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http://www.aporia.co.kr/bbs/board.php?bo_table=rpb_edu&wr_id=25


2014년 7월 11일 금요일

구글(Google)을 제대로 검색하는 10가지 방법


모든 검색 엔진이 그렇지만 검색 창에 단순히 찾고자 하는 단어 하나나 무의미하게 단어를 나열해서는 원하는 정보를 제대로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초창기에는 검색 결과가 너무 적어서 문제였지만 요즘에는 너무 많아서 문제다. 아무튼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검색 엔진이 있다면 사용 방법을 꼭 숙지하는 것이 우선이다.

여기에 설명하는 구글(Google)  검색 팁은 매일 수시로 사용하는 기본적인 것이다. 그동안 그냥 아무 생각없이 검색 창에 단어를 입력하고 결과 목록을 뒤졌다면 챙겨두면 유용할 것이다.

1. 큰따옴표 사용으로 특정 단어 또는 어구만 검색하기


아래 그림은 검색 창에 [전자 상거래]라고 입력한 결과이다. 약 9,970,000개의 결과가 나왔다.



아래 그림은 ["전자 상거래"]라고 입력한 결과로 약 9,950,000개의 결과물이 나왔다. "전자"나 "상거래"가 정확히 한 어구로 붙어 있지 않은 경우는 제외가 된 것이다. 확실히 결과 목록이 다르게 나타난다.



아래 그림은 각각 [South Korea]와 ["South Korea"]일 때의 결과이다.





사실 영문의 경우 단수(korea)와 복수(koreas)의 결과도 다르게 나타난다.

참고 글: [Google] 구글은 복수와 단수를 구별한다(2005. 8. 21.) 

2. 필요없는 단어 빼기


특정 단어를 포함한 결과물은 제외하고 싶다면 해당 단어 앞에 "-"(하이픈. 따옴표 제외)을 넣으면 된다. 아래 그림은 [박철우]라는 검색어를 넣은 것이다.



지금도 활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REF라는 음악 그룹에도 같은 이름이 있다. 그래서 다음은 이를 제외한 것이다.



유명한 배구 선수도 있다. 그래서 또 뺐다.



3. 특정 사이트에서만 검색하기


검색 범위를 특정 사이트로만 한정하려면 아래 그림과 같이 "site:"라는 예약어를 사용한다. 아래 그림은 "전자 상거래"라는 검색어를 "서울대학교(snu.ac.kr)"에서만 찾는 것이다.



다음은 검색 범위를 학교 기관까지 넓혀 "site:ac.kr"이라고 넣은 것이다.



다음은 해당 검색어를 우리나라 정부 기관 사이트(site:go.kr)에서만 찾은 결과이다.



다음은 해당 검색어를 우리나라 연구 기관 사이트(site:re.kr)에서만 찾은 결과이다. 이런 용도로는 사용할 일이 많을 것이다.



4. 동의어 등 비슷한 단어들도 한 번에 다 검색하기


한글로 [음식]을 입력하고 검색을 하면 아래 그림과 같이 "요리"라는 단어도 함께 찾아준다. 이런 식으로 한글(Korean)을 입력한 경우에는 비슷한말, 기본형, 철자가 틀린 말 등도 같이 찾아준다. 예를 들어, "프레젠테이션"을 검색하면 "프리젠테이션"도 같이 찾는다.



검색어가 영어인 경우에는 아래 그림과 같이 입력한 그 단어만 찾게된다.



이를 유사한 단어까지 확장하려면 단어 앞에 "~"(물결표)를 해주면 된다. 검색어 "food"인 경우에는 "recipe", "cooking", "nutrition" 등의 단어도 같이 찾는다.



5. 특정 형식의 파일만 찾기


Word(워드)나 Excel(엑셀) 등 특정 형식의 파일만 찾을 때에는 "filetype:"라는 예약어를 사용한다. 다음 그림은 PowerPoint(파워포인트) 파일만 찾기 위래 "filetype:ppt"를 사용한 것이다. 결과물 링크 앞에 [PPT]라고 표시되어 나온다.



아래 그림은 PDF 파일만 찾는 것이다.



아래 그림은 한/글(아래아한글)만 찾는 것이다. 확장자인 HWP가 정식으로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링크 앞에 [HWP]라는 표식은 없지만 해당 형식의 파일만 찾아주기는 한다.



6. 두 개 이상의 검색어 중 하나만이라도 있으면 다 찾아오기


기본적으로 검색 창에 두 개 이상의 단어를 입력하면 이 단어가 모두 들어 있는 페이지를 찾아오게 된다. 하지만, "OR" 연산자를 사용하게 되면 이 중 하나만 들어 있어도 해당 페이지를 불러온다. "OR"(따옴표 제외)는 항상 대문자로 써야 한다.






7. 숫자 범위로 검색하기


2000~2007년 사이의 모든 숫자(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를 모두 검색어로 넣어야 하는 경우 ".."(마침표 두 개)를 사용하면 된다.



8. 검색 창을 계산기로 사용하기


정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참고로 이런 용도로 검색 창을 사용할 때에는 [검색] 단추를 누르거나 [Enter] 키를 치기 전에 검색어 맨 뒤에 "="(등호)를 넣어주는 것이 좋다.






참고 글: [Excel/Google] Excel과 Google을 간단한 계산기로 활용하기(2007. 8. 1.) 

9. 단어의 정의 찾기


특정 단어의 정의(설명)를 찾고 싶다면 "define:"이라는 예약어를 사용한다. 한글 단어는 아직 결과물이 없지만 사전식으로 용어를 찾을 때 유용하다.



10. 웹 페이지 주소(URL)에 있는 단어로 검색하기


인터넷에 있는 모든 파일(객체)에는 고유한 주소가 있다. URL이 그것인데 우리가 흔히 인터넷 주소라고 하는 것이다. "http://www.cantips.com/abc"나 "http://www.cantips.com/sample.pdf"와 같이 생겼다. 이 주소에 있는 단어만 찾으려면 "inurl:"이라는 예약어를 쓰면 된다. 아래 그림은 URL에 "report"라는 단어가 들어간 곳만 찾는 것이다.



아래 그림과 같이 사용하면 우리나라 정부 기관의 웹 페이지 중 report라는 이름이 들어간 곳을 찾을 수 있다.



URL에는 파일 이름도 포함이 되므로 아래와 같이 사용하면 우리나라 연구 기관의 홈 페이지에서 "보고서"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는 파일들만 불러오게 된다. 보통 파일 이름에는 한글을 쓰게 되지만 파일 이름이 아닌 폴더 이름에는 한글을 잘 쓰지 않는다.



http://cantips.com/686

2014년 7월 8일 화요일

블로그 카페


&  메일 / 블로그

생활문화 ㅡ empal  / cyworld   http://www.cyworld.com/highjune5  기록의 힘, (상상)
정치사회 ㅡ daum  / daum     http://blog.daum.net/highjune   생각의 힘, (상징)
경제경영 ㅡ naver 책 /naver    http://blog.naver.com/highjune  현실의 힘, (실재)
공간환경 ㅡ  paran
정보기술 ㅡ  tistory/gmail 

블로그.  highjune.tistory.com.  daum id pw
           infomatics..tistory.com. @me.com pw+

= highjune.tistory.com. --  daum id  pw
생활과 기록  http://highjune.tistory.com/
사상과 역사. http://aview.tistory.com/
정치적인 것 http://apolitics.tistory.com/ 
경제 경영   http://economan.tistory.com/
문화적인 것 http://culturology.tistory.com/  

= infomatics.tistory.com -- id@me.com.  pw
정보문화학 http://iculturology.tistory.com/   story media 이야기와 매체

워드프레스 
# highjune.wordpress.com
highjune@me.com.  highjune.   pw+
# highjune1.wordpress.com
highjune@empal.com.  highjune1 pw+
#highjune2.wordpress.com 
highjune@naver.com highjune2 pw+


& 카페

네이버
       경영3.0 (관리)  http://cafe.naver.com/management30 
 포스트미디어   http://cafe.naver.com/postmedia
       개발자 포럼    http://cafe.naver.com/digitree  (개발팀))

다음   
       미래구상포럼 http://cafe.daum.net/acsfuture  
       미래공간개발 http://cafe.daum.net/spacedev
       미래기술포럼 http://cafe.daum.net/posttech
       시스파인     http://cafe.daum.net/sysfine
       다 슬 음     http://cafe.daum.net/dasoleum


0.생활기록
1.사상역사
2.정치사회
3.경제경영
4.문화매체
5 과학기술
6.정보학
7.정보기술
8 계획설계

1.생활기록 + 사상역사
2.정치사회
3.경제경영
4.문화매체
5 과학기술 + 정보기술
6.공간환경 + 계획설계

A 사상 역사 기록
S 공간환경 계획 설계
P 정치 사회 법
E 경제 경영 회사
C 문화 예술 생활
T 과학 기술 매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