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03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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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Z. Tamanaha(이헌환 역), 법치주의란 무엇인가 (박영사, 2014)
... 낙천적인 사람들 외의 모두에게 1990년대의 승리주의자의 확신은 사라져버렸다. 이러한 수많은 새로운 불확실성의 한 가운데 모든 대립구도를 관통하여 한 가지 점에서, 그리고 오직 한 가지 점에서만 폭넓은 동의가 있는 듯하다. 즉 '법의 지배'가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것이다. (4면)
법의 지배를 옹호하는 이러한 외견상의 일치성은 역사상 비할 바 없는 업적이다. 다른 어떤 하나의 정치적 이념도 전 지구적인 동의를 얻지 못하였다. (7면)
중국 법학교수 리슈광이 지적한 바와 같이, "'중국의 지도자들은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원한다.' 그 차이는 법의 지배 하에서는 법률이 우위이며 권력의 남용에 대한 견제로 기여할 수 있다. 법에 의한 지배 하에서는 법률은 법적 방법으로 억압하는 정부의 수단으로 기여할 수 있을 뿐이다." 극명하게 대립되는 이러한 이해에서 보면, 법의 지배는, 모든 사람이 그것을 찬성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서로 대비되는 확신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선(good)"의 관념과 유사하다. (8면)
한 학자는 "그것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법의 지배의 많은 개념이 존재한다." 많은 학자들은 그것이 "어쩔 수 없이 논쟁적인 개념", 즉 그 핵심에 이르기까지 의견불일치를 특징으로 하는 관념이라고 생각한다. (8면)
그러므로 법의 지배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동의 없이도 오늘날 세계에서 탁월하게 정당화하는 정치적 이념이라는 특유한 상태에 있다. 이 이념에 더 나은 명확성을 부여하는 것이 이 책의 첫째의 목표이다. (9면)
법의 지배를 둘러싼 역사, 정치, 이론의 탐구는 그 기원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할 것이며 그 구성요소들을 확인할 것이다. 그것은 성공할 수 없는 각각의 사회적, 정치적 맥락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모든 상황에서 반복될 수 있는 공식을 내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유래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기능하는지에 관하여 배우는 것은 그것이 지역적 상황에서 작용할 수도 있는 대안적 방법을 찾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9면)
두 개의 특별한 관심이 그 시작에서 언급된다. 첫째, 유명한 하이예크를 포함하여, 가장 떠들썩한 법의 지배의 챔피언 중의 몇 사람은, 그것이 광범위한 사회적 복지국가 및 분배적 정의의 달성과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이론가들은 가끔, 자유주의, 제한되지 않는 자본주의 및 법의 지배를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꾸러미로 연결짓는다. 하지만 법의 지배를 실행하기 원하는 비서구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자유주의로 나아 가려는 어떤 열망도 없으며, 법의 지배에 입각한 많은 서구사회가 사회적 복지국가에 전념하고 있다. 그리하여 수많은 기본적인 사회적 및 정치적 쟁점들이 법의 지배이념을 채택하는 결정에 내포되어 있다. 둘째로, 법의 지배는 언제나 법관과 변호사들에 의한 지배로 될 위험을 수반한다. 명확한 반민주주의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에 덧불어, 이것은 법관과 변호사가 배타적으로 엘리트로부터 혹은 다른 어떤 별개의 하부집단으로부터 선발되는 사회에서는 추가적인 관심사를 불러일으킨다. 법의 지배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나라들은 이러한 문제들과 기타 다른 잠재적인 문제들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10, 11면)
이러한 탐구를 명확히 드러내는 것은 법의 지배라는 이념이 처음에 비자유주의적 사회에서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 이 연구는, 현재의 자유주의적 사회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 문제들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비자유주의적 사회들이 그들의 상황에 적합한 방법으로 법의 지배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줄 것이다. (11면)
...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아테네인들에게는 민주주의는 '법의 지배'와 동의어이었다." 아테네는 전문법조인 계급이나 법의 제정 혹은 법적 직무수행을 독점하는 국가공직자를 두고 있지 않았다. 법은 - 문자 그대로 - 시민들의 활동의 산물이었다. (16면)
이런 종류의 대중적 시스템의 위험은 민주주의가 절대군주제만큼이나 독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중적 독재로부터 보호하면서, 법률은 대중적 법원과 입법의회에 의해 쉽게 수정되지 않도록 하여, 대중적 독재를 따로 분리시키는 지위가 부여되었다. (16, 17면)
그들의 견해는 가장 좋은 정부는 법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가장 훌륭한 사람에 의한 지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은 모든 상황을 모두 말해주지는 않으며 모든 사건들을 미리 고려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플라톤이 생각하기를, "사실 훌륭한 왕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법은 '고집세고 무지한 사람'처럼 정의의 길에 서있는 장애물이다." 그들이 옹호하는 법에 의한 지배는 인간이 나약하기 때문에 필요한 차선의 해결책이었다. 플라톤은 법률론에서, 그가 공화국론(The Republic)에서 지배자로 제안했던 (철학적으로 교육되고 덕망을 갖춘) 자애로운 수호자에 대한 좀 더 현실적인 대안으로, 법이 지배하도록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권력이 한 사람의 손에 집중되었을 때 존재하는 부패와 남용의 위험 때문에 법에 의한 지배를 옹호하였다. (21면)
자유주의 대 사회주의 ... 법의 지배의 파악된 쇠퇴는 지난 150년간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거대한 이데올로기 경쟁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119, 120면)
상업활동의 이러한 팽창은 그 대가를 불평등하게 분배하였다. 소수의 제조업 실력자들에게는 거대한 부를 창출하였고, 성공한 상인과 그들의 직업적인 살림꾼들(법조인과 은행가들)이라는 중요 상위계급들에는 넉넉한 부를 창출하였으며, 점점 더 늘어나는 종업원, 교사, 상점점원, 기타 서비스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덜 넉넉하지만 여전히 적당한 부를 창출하였다. 제철소, 방직공장, 석탄탄광 등에 배치된 다수의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부가 없이 겨우 최소한으로만 음식과 주거를 창출하였다. (120, 121면)
첫 번째 요소는 몸과 마음을 마비시키는 작업을 행하는 지독한 조건들 속에서 오랜 시간을 혹사당하는 영구히 불안정한 많은 수의 노동빈곤층이다. ... 이를 중상모략하는 사람들에게는, 자본주의는 그저 가혹한 것이 아니라 불공정하다. 가장 혜택을 많이 받는 집단, 즉 자본가들은 가장 노동을 덜하며 또한 최저의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자유주의적 경제체제는 도덕적으로 파산하였으며,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무자비하며 이기적이고 반사회적인 입장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사회적인 연대감을 와해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반대자들에게 비난받았다. (122면)
두 번째 요소는 유권자 자격의 확대이었다. ... 먼저 재산상의 자격이 하향되고, 그 후 무산 임금소득자를 포함하여, 결국에는 (20세기 초에) 여성에게 참가를 허용하였다. (123면)
"'보통사람'의 '자본가'에 대한 보호를 위한 아래로부터의 요구는, 사회의 안전과, 실직에 대한 공공수단 그리고 노동자의 최저임금 등을 위하여 목소리가 커지고 정치적으로 효과적이었다."(Mill, hapters on Socialism) 영국에서 그리고 점차적으로 유럽의 다른 곳에서 정부에 의해 부과되거나 혹은 후원을 받은 법안들은 노동시간의 제한, 노령자연금, 건강보험, 노동자의 산업재해보상, 무상급식의 보편적 교육 등을 포함하였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집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부관료제는 바꿀 수 없을 만큼 커지기 시작하였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사회복지국가에 길을 내주었다. (124면)
사회복지법안들에 대한 저항은 다양한 형태를 띠었지만, 여기서 적절한 하나는 이러한 발전이 법의 지배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는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밀어붙여진 주장이었다. 이 주장을 밀어붙인 가장 영향력 있는 두 이론가들은 영국의 헌법학의 거인인 A. V. 다이시와 오스트리아계 영국인인(오랫동안 미국에 거주하였다) 정치이론가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F. 하이예크이었다. (124면)
1888년에 처음 출간된 다이시의 헌법연구입문(Introduction to the Study of the Law of the Constitution)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체제에서 법의 지배에 관한 최초의 뛰어난 현대적 체계화와 분석을 담고 있다. 다이시는 세 개의 중복적인 요소를 이용하여 법의 지배를 명확히 하였다. 그의 첫 번째이자 중요한 표현은 다음과 같다. "일반적인 법적 방법으로 성립된 법의 명백한 위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국가의 일반법원에서 신체나 재산상의 손해를 받지 아니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법의 지배는 권력자가 광범위하고 자의적이며 재량적인 구속권을 행사하는 모든 통치체제와 대비된다." 이 생각에는 세 가지 구별되는 사상이 혼합되어 있다. 그의 설명은 미리 존재하는 법이 없이는 어떤 처벌도 있을 수 없다는 관념에 집중된다. ... 다이시는 개인에게 제한을 가하는 정부공직자의 재량적 권한행사가 법의 지배와 양립할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다이시에게는, 재량과 법은 정반대이다. 법관은 법이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고지하는 단순한 수도관일 뿐이다. "사법권은, 법의 권력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실체가 없으며, 법원은 단순한 법의 도구일 뿐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미국연방대법원의 마셜 대법원장이 동일한 생각을 표명하여 서술하였다. (125, 126면)
다이시에 따르면, 법의 지배의 두 번째 요소는 모든 사람이 통상의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이다. (126면)
다이시의 세 번째 요소는, 일반법원의 관할을 강조함으로써, 법의 지배를 뒷받침하는 근거에 대한 서술과 별개의 요소는 아니다. 그는 법의 지배는 "법원에 제기된 특수한 사건에서 사적 개인의 권리를 결정하는 판결"의 대량성과 전체성의 산물이라고 생각하였다. (126면)
그의 책 9판의 "서문"에서 최초 출간 이후 30년간 잇따라 일어났던 변화를 검토하면서, 다이시는 투덜거렸다. "법의 지배에 대한 오래된 숭배는 영국에서 지난 30년 동안 뚜렷한 쇠퇴를 겪었다. 이 주장의 진실은 실체적인 입법에 의해, 몇몇 계급들 사이에서 법과 법관 모두에 대한 확실한 불신의 존재에 의해 그리고 사회적 혹은 정치적 목적을 획득하기 위하여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뚜렷한 경향에 의해 입증되고 있다." 다이시의 분노의 특수한 과녁은 - 법의 지배에 대한 무시무시한 위협을 제기하면서 - 사회복지국가의 발전으로부터 귀결하는 행정행위의 확대이었다. 다이시에게 관심사이었던 것은 일반법원이 엄청난 양의 행정행위를 심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정책, 경영, 전문성 그리고 효율성 등 성질상 법적인 것이 아닌 쟁점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법원이 그러한 심사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27면)
행정기관은 정책위임사항을 실현하거나 사회적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하여 전형적으로 행정기관공직자에게 근거와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는 법률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또 만들어진다). 이 권한은 가끔 규제의 발령, 기속적 명령, 집행행위, 개별 사건에서의 결정 등을 포함한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하나의 기관 내에서 재량적 결정과 입법, 행정, 사법이 결합된 권한을 행하였다. 매일의 사회생활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는 포괄적 지위를 갖는 지방정부국, 통상국, 교육국, 토지위원회, 국세위원회, 사회보장위원회, 기타 다른 행정기관들이 모두 입반법원에 의해 실질적으로 심사될 수 없는 개인에 관한 결과물을 다루었다. 그 결과는 효과적인 법적 제한이 없는 정부행위영역상의 엄청난 증가이었다. (127, 128면)
한 마디로 말하여, 우리의 행정부는 집행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입법도 하며, 사법적 기능까지도 점점 더 많이 행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에게 법의 지배로부터의 도피와 관련되고 그래서 그 본질상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지금 그러한 것처럼 상당한 영역의 법적 쟁점들을 법원의 인식으로부터 배제하는, 행정부에 의한 사법기능의 행사이다. (Barker) (128면)
많은 의심이 제기되어 왔던 다이시의 상황분석이 옳은지 여부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그의 이해의 방법 내에서 사회복지국가와 행정기관에 의해 개인의 자유와 법의 지배에 제기된 위협은 명백하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였다. (128면)
1944년 출간된 시대적 고전인 The Road to Serfdom에서 하이예크는 법의 지배를 자유의 토대로 인정하였다. 다이시와 마찬가지로, 하이예크는 "자의적인 행정부 강제수단의 증대와 소중한 영국적 자유의 기초인 법의 지배의 진보적 파괴 사이의 관련을 보았다." (129면)
하이예크에 따르면, 법제도의 모든 규칙은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법률은 일반적이고, 평등하고, 명확하여야 한다." (129면)
하이예크는 (다이시와 같이) 법과 재량 사이의 기본적인 대립을 주장하였으며, 재량을 자의적인 의사와 동일시하였다. 이러한 이해에서는, 역사가 프레데릭 메이트랜트(Frederic Maitland)가 말한 것처럼, 나쁜 일반법일지라도 기속되지 않은 의사보다 낫다. "변덕은 사법이 유죄가 될 수 있는 가장 나쁜 부도덕이다. 즉 나쁘기는 하지만 잘 알려진 법은 이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규정에 의한 판결보다 자유를 덜 침해한다." (131면)
하이예크는, 오늘날의 정부가 효율적으로 기능하여야 한다면 재량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 문제는, 너무도 자주 이 법적 제한이 결여되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강제수단을 적용하는 것을 포함한 구체적 상황에서 특정 정책의 성과를 달성하고자 애쓰는 행정당국은, 일반성 요건이 충족될 수 없기 때문에 법의 지배를 위반한다고 하이예크는 주장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정의'의 추구는, 정부가 시민과 그의 재산을 특정 집단을 위하여 특정 성과를 보장할 목적을 가진 행정부의 객체로 취급하는 것을 필수적이게끔 만들었다." 하이예크에 따르면, 이 점에서 행정행위의 증대는 "이미 법의 지배의 이상과는 한참 멀리 떨어져 있게 만들었다." 하이예크는, 사회정의라는 이름으로 진보주의자들에 의해 행해진, 이 이상에 반하는 지속적 캠페인이라고 여겼던 것에 특히 놀랐었고, 이를 조롱하였다. (131, 132면)
행정행위에 대한 그의 공격을 역설하면서, 하이예크는 실질적 평등과 실질적 (혹은 "분배적") 정의의 상호관련된 목표가 본질적으로 법의 지배와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132면)
분배적 정의에 대한 하이예크의 첫 번째 반대는, 어떤 것이 공정한 분배인지를 사회가 결정할 수 있는 받아들여진 가치체계가 없고, 그래서 몇몇 사람의 견해가 다른 사람을 압도해야 할 것이다. 가치체계에 관한 합의가 있는 사회에서조차도, 비교될 수 없는 가치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날 것이며, 어쩔 수 없이 다수에 대한 반대자가 있을 것이다. 하이예크의 두 번째 반대는, 무수히 일어나는 상황의 다양성이 미리 정해지는 일반적 규정에 의해 규율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체계도 필연적으로 배타적일 것이라는 점이다. (133면)
언뜻 보아 법의 지배에 관한 하이예크의 견해는 실질적으로 법관법으로 구성된 보통법체계와 어울리지 안흔 것처럼 보인다. 일찍부터 하이예크는 이러한 관심을 표명하였다. "판례법체계와 법의 지배의 이념 사이에 어떤 본질적인 충돌이 있다. 판례법 하에서는 법관이 꾸준히 법을 형성하기 때문에, 그가 이미 존재하는 규정을 단순히 적용한다는 원칙은 그 체계 하에서는 법이 성문화된 곳보다 덜 완전하게조차도 전혀 다루어질 수 없다." (134, 135면)
하이예크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관념을 보통법에 적용하여, 법이 누군가의 의도적인 산물이 아닌 모두의 이익에 적용되는 자기교정적이고 자연발생적으로 성장한 질서라는 견해를 상정하였다. (135면)
하이예크가 말하는 보통법의 특징은 법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된다는 오래된 중세적인 견해를 되풀이한다. (136면)
경제적, 사회적 규제로의 귀결은, 제한없는 재량적 기준과 전문가에 의한 늘어난 정책결정에 더 많이 의지하게 되면서 - 공해규제, 소비자보호, 노동현장의 건강과 안전 등 - 나열된 복잡한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팽창과 더불어, 행정행위는 또한 어느 정도의 합법화를 겪게 되었다. 미국에서 세기 중반에 제정된 행정절차법과 영국에서의 행정법의 발전은 행정부의 활동에 법적 견제를 제도화하였다. 그러한 견제는 대부분 절차적이었으며, 미국에서 행정행위를 심사하는 법관은 행정부의 추정된 전문성으로 인해 행정부의 결정을 강하게 존중하는 것을 표명하였다. 행정기관은 또한, 특히 일반법원과 유사한 독립적인 행정법원을 창설함에 있어서 선명한 내부적 기능분립을 설정하였다. (140면)
"법의 지배의 결정적인 요소가 오늘날의 규제국가의 상황 속에서 붕괴되고 있다는 증거가 계속 쌓이고 있다. 모든 자본주의적 복지국가에서, 법규범에 관한 고전적인 자유주의적 관념과 양립할 수 없는 "공공의 이익에서(in the public interest)" 혹은 "선의로(in good faith)"와 같은 법적 기준처럼 법은 점점 더 애매하고 불명확한 형태를 띠고 있다. 모든 곳에서 전통적인 의회의 법제정과 상황의 특유한 행정부명령의 다루기 힘든 결합이 생기고 있다. 모든 곳에서 관료 및 사법부의 재량이 커지고 있다. 법의 지배이념의 최소한의 요구가 언제나 국가의 행위는 예측가능한 형태를 띠어야 한다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이러한 기준에 거의 부응하지 못한다." (Bill Scheuerman, The rule of Law and the Welfare State) (141면)
급진좌파가 가장 분개하고, 법의 지배가 이러한 정치적 및 경제적 체계를 지탱함에 있어서 제공하는 서비스로 공격받는 것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이다. (145면)
좌파에게는, 법은 그 권위주의적 면목을 보여주고, 권력과 특권을 보호하며, 평화로운 행진과 경찰봉, 총검이 장착된 소총, 달려드는 군견을 과시하는 화난 경찰과 연방방위군의 개입으로 응수하면서, 너무 자주 잘못된 편에 서 있었다. 우파에게는, 만연한 시민불복종이 법에 대한 경멸을 부추겼고, 참을성 있고 우유부단하게 법이 대응하는 사회적 무질서의 조짐을 보이면서 한층 더한 무법천지로 되었다. (146면)
비판법학운동(the Critical Legal Studies) - 그 상징은 "법이 정치이다."이며, 그 목표는 "법적 자유주의"이다 -은 이러한 사회적 돌발상황으로부터 탄생하였다. 그 운동을 기초한 구성원들은 1960년대 동안 엘리트기관의 법학도들과 1970년대 동안의 신참 법학교수들이었다. 그들은 격변상황에서 법과 질서의 편에 너무 자주 정렬하였던, 자유주의에 기대는 주류 법학교수들을 그들의 과거의 동맹으로 혐오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들은 법적 자유주의를 그것이 그러했던 사기로 폭로하고자 결심하였다. 운동의 철학적 예언자이었던 로베르토 웅거(Roberto Unger)는 자유주의에 대한 이론적 비판서인 Knowledge and Politics(1975)와 오늘날의 자유주의 사회에서 법의 지배의 쇠퇴에 대한 심사숙고한 평가로서 Law in Modern Society(1976)을 출간하였다. 이 책들은 자유주의와 법의 지배에 대하여 최초의 집중공세를 퍼부었다. (147면)
급진좌파가 그렇게 본 것과 같이, 자유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약속했지만, 대신에 은밀하게 새로운 형태의 지배와 불평등으로 되었으며, 그것들을 정당성으로 은폐하였다. (147, 148면)
그렇지만, 자유는 다른 사람에게 해로운 방법으로 행사될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이 자기이익을 추구하고 자신만의 선에 관한 입장에 몰두하도록 부추겨지는 경우에 높아지는 가능성이다. 단체가 정부만큼이나 강력해지게 되면, 그리고 근로조건이 한 사람의 존재에 훨씬 넘치게 영향을 미칠 때에는, 정부가 자의적으로 강제를 적용할 수 있는 추상적 위협이 곧바로 약화된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근로환경에서의 억압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도록 거의 말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정부의 규제권한은 건강과 안전의 문제에 한정된다), 실제로 그것은 사적 영역에서 허용할 수 없는 간섭과 같은 그러한 반보호적 장애물을 서둘러 세운다. 이와 비슷하게, 자유주의와 자본주의가 출생신분과 관련된 일신전속적인 사회적 위계에 근거한 불평등에 대한 현실적인 진입로를 만들었더라도, 부와 재능의 불평등한 분배에 근거한 새로운 불평등이 창설되었다. 귀족가문이나 세습적 계급제도가 재능과 경제적 계층에 근거한 것으로 대체되었다. 부자와 빈자 사이의 불균형이라는 새로운 불균형은 과거의 불평등 하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 다시 자유주의는 사적 영역에서의 간섭과 같은 정부의 보상노력에 반하는 장애물을 서둘러 세운다. 사적인 지배와, 부와 재능에 대한 불평등한 분배는 서로서로 보완한다. 부와 재능이 더 커질수록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능력도 더 커진다. 이는 다음에 더 많은 부를 낳는다. 특히 가난한 자, 능력이 덜한 자, 덜 교육받은 자 혹은 사회적 추방자들은 자유주의 하에서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 과거의 귀족정 하에서는 엘리트들은 최소한 사회적 책임의 윤리에 기속되어 있었다. 돈이 지배하는 새로운 귀족정에서는 유일한 윤리는 "당신의 목표를 추구하라"이었다. 그들이 들었던 그것은 (부수적으로) 사회에도 마찬가지로 이익이라는 것이었다. 이 외에도 모든 사람은 부자가 되는 동등한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실패한 사람은 그들의 운명을 받아들일 만하였다. (148, 149면)
하층민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를 위한 자유라기보다는, 자유주의는 경제적 권력을 가진 사람들인 소수의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인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도록 방기하였다. ... 자유주의는 시종일관 중립적이기를 주장하면서, 결국 경제적 엘리트의 이익을 위해 그리고 그 이익으로 지배하게 된다. (149면)
결국 자유시장에 의해 주어진 경제적 효율성 때문에, 자유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빈자들이 다른 경제적, 정치적 체계 하에 있을 때보다 여전히 더 낫다는 것을 절대적인 물질적 수단으로 부가한다. 비판에 대한 효과적인 증거로, 전 세계에서 합법적이든 그렇지 않든 미국으로 이민하고자 절규하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보라. 이 반응은 체계 내에서 실패자들에게는 냉혹한 위안이다. (150면)
20세기 초기 30년간 세계에서 터져 나온 같은 의견을 가진 일단의 학자들의 표상인 법현실주의는 비판법학운동의 지적 선구자이었다. 법현실주의자들의 공격의 목표는, 보통법원칙이나 법원칙을 완화하는 것이 자유를 침해하고 재산권을 침해하며 시장을 방해한다는 주장에 근거를 두고 사회복지입법에 대한 법원의 저항을 제압하는 것이었다. 법현실주의자들은 법의 지배가 또한 의존하고 있던 19세기 법사상의 두 가지 중요한 버팀목을 체계적으로 비판하였다. 개념형식주의와 규정형식주의이다. (153면)
형식주의자의 이해를 대체하기 위하여, 법현실주의자들은 원하는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법을 특징지우는 도구적 견해를 옹호하였다. ... 법에 관한 도구적 관념은 법개혁의 깃발 아래 18세기 후반에 제레미 벤덤에 의해 처음으로 주창되었다. (15면)
법현실주의자들에 의해 촉진된 법에 관한 실용주의적 및 도구적 접근은 '상대주의"라는 비난으로 덧씌워졌다. 법이 곧 정치는 아니라는 것, 법이 통일성과 구체적인 도덕원칙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재차 시인하는 것이 미국의 법제도에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법현실주의는 비록 많은 학자들이 그 작업을 수행하고 그들의 주장의 힘이 완전히 제압될 수 없었기는 하지만,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무대에서 사라졌다. (157면)
드워킨의 설명에 따르면, 법관들은 원칙에 관한 판결을 내리지만, 그로 인해 정책의 문제를 결정하지는 않으며, 그들이 확인하는 원칙들은 (넓게 생각하여) 법 내에 있고, 그래서 법이 여전히 지배한다. 그리하여 도덕적으로 원칙화된 워렌 법원의 판결들은 정당하며 법의 지배와 일치하였다. (159면)
워렌 법원을 정당화하는 두 번째 전략은 다른 방식을 택했다. 법사회학자인 필립 노네(Philipe Nonet)와 필릭 셀즈닉(Philip Selznick)에 의해 저술된 Law and Society in Transition(1978)은 최근의 법의 지배의 쇠락을 인정하였지만, 그것은 억압적 법(다른 사람에 대한 일부사람의 권위주의적, 자의적 지배)으로부터 자율적 법(법의 지배)으로, 그리고 반응적 법(실질적 정의를 더 많이 고려하는 것)으로 이행하는 3단계의 변천으로 자리매김하여,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해석하였다. (160면)
"따라서 반응적 법의 뚜렷한 징표는 규정과 정책에 있는 함축적 가치들에 대한 탐구이다." 반응적 법제도 하에서는 체제는 엄격히 규정지향적으로 되기보다는, 좀 더 결과지향적으로 된다. 합법성은 체제 내에서 최고의 가치로 남아 있지만, 엄격한 형식주의는 아니며, 가끔은 목적, 원칙, 정의, 공정성 등에 자리를 내어주는 그러한 것이다. (161면)
더욱이, 그(로베르토 웅거)는 인용하기를, 사회복지국가가 "법의 지배의 형해화"를 가져오고 있다는 하이예크와 다이시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동의를 표하였다. 웅거는 그들이 인정하였던 문제들이 어떻게 행정의 맥락을 넘어서 법에 넘치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상세히 설명하였다. 웅거에 따르면, 법에서의 두 가지 중대한 변화가 사회복지국가에 의하여 발생하였다. 첫째, 법관들은 점점 더 공정성, 선의, 합리성, 비양심성 등과 같은 폭넓은 해석이 가능한 기준을 적용하도록 요구받게 되었다. 둘째, 행정부 공직자가 아닌 법관이, 서로 다른 가치관계를 가진 넓은 대안적 수단들 중에서 그에게 선택하게 하는 과정으로서, 법률적으로 수립된 정책목표를 어떻게 가장 잘 달성하는가에 관하여 결정하기 위하여 점점 더 합목적적인 추론을 하도록 요구되었다. 웅거에 따르면, 이 두 가지 변화는 형식적인 법적용이라는 전통적인 사법의 역할과는 양립하지 않았고, 일반성, 평등성 및 명확성의 성질을 가진 규정체계의 이념에서 벗어났다. (162, 163면)
비판적인 법학자들은 무수히 많은 방법에서 사회와 법에 대한 자유주의적 접근방법은 공동체의 역할을 판단하지 못했다고 주장하였다. 인민들은 공동체로 태어나고 공동체에 의해 양육되며, 언제나 공동체 내에서 존재한다. 그들은 공동체로부터 언어, 도덕, 역할 그리고 사고방식을 얻는다. 그들의 정체성은 공동체 내에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그들을 바라보는가에 대한 기능이다. ... 비판적 학자들은 명백히 개인주의적 용어로 구축된 자유주의적 법의 시스템이 그 속에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는 공동체주의적 충동을 감추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165면)
법의 지배는 공유된 가치의 공동체에서는 더 이상 우월하지도 않다. 충돌의 상황에서 지배적인 저항은 엄격한 규정적용 대신에, 공유된 공동체 가치를 촉진하는 결과로 될 것이다. (166면)
이 이상적인 입장은 자유주의가 수용하는 현대사회의 주된 모습, 즉 다원주의라는 현실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구성원인 개인들의 이익과 선들 중에서 중요한 공통성을 요구한다. ... 그렇지만, 그것들이 가져오는 알만한 부정적인 것들에도 불구하고, 개인주의와 다원주의는 또한 많은 점에서 오늘날의 사회구성원들에게는 매력적이다. (167면)
오늘날 법이론학계에서는 불확실성 명제에 관한 논의가 거의 없다. (176면)
인권의 부정, 대량의 빈곤, 인종분리, 성적 불평등 및 종교박해 등에 기한 비민주적 법체제는 원칙적으로 훨씬 더 서구민주주의 법체계의 어느 것보다 훨씬 더 낫게 법의 지배의 요건에 들어맞을 수가 있다. ... 그것은 헤아릴 수 없이 더 나쁜 법체계일 것이지만, 하나의 점에서는 우수할 것이다. 즉 법의 지배와의 일치성에서이다. 법은 ... 법의 지배를 위반하지 않고도 노예제도를 만들 수가 있다. (Carothers) (183면)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가 시장거래에 필요한 안전성과 예측가능성을 제공하기 위하여 형식적인 규정지향적 법체계를 요구한다고 주장하였다. (191면)
하이에크와 웅거가 제시한 것에 반하여, 사회복지국가는 반드시 법의 지배를 위협하지는 않았다. (192면)
형식적 합법성과 같이 민주주의는 법의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느냐 하는 것에 관하여 아무 것도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으로 공허하다. (194면)
민주주의는 도덕적으로 선한 법을 만드는 아무런 확신도 주지 않는 둔감하고 다루기 어려운 매커니즘이다. (197면)
법의 지배에 관한 모든 실질적 설명은 형식적 법의 지배의 요소들을 포함하되, 다양한 내용적 설명을 부가하면서 더 나아간다. 가장 일반적인 실질적 설명은 법의 지배 내에 개인적 권리를 포함한다. 로널드 드워킨은 이에 대해 재미난 주장을 하였다. "나는 법의 지배의 두 번째 관념을 '권리(rights) 관념'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것은 여러 면에서 법전(rule book) 관념보다 훨씬 더 야심적이다. ..." (201면)
그는 공동체 내에서 그러한 권리들의 근거를 확인함으로써 형이상학에 호소하기를 피하였따. (202면)
도덕철학자인 알라스테어 매킨타이어는 최근에 "이 세상에서 어떤 사실도 도덕적 의견불일치의 범위와 같이, 때로는 충분히 기본적인 쟁점에 관한 의견불일치보다 더 명백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말하였따. ... 더 나아가, 논쟁은 권리의 내용을 넘어 적절한 구제방법에 관한 의견불일치에까지 이르고 있다. (203면)
법의 지배에 관한 가장 강력한 실질적 입장은 형식적 합법성, 개인적 권리 및 민주주의를 포함하지만, "사회복지의 권리"라는 표지 하에 대략적으로 범주화될 수 있는 더 이상의 질적인 차원을 추가한다. (220면)
법학자들에 의해 가장 찬성받는 것으로, 이것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의한 법의 지배에 관한 지배적 이해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예측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234면)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되는 법의 지배의 하나의 한계는 그것이 불공정하거나 사악한 내용을 가진 법체제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미국과 남아공의 역사적 사례에 의해 인정된 것처럼, 노예제도, 합법화된 인종분리정책, 인종차별 등과 양립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싱가포르나 중국의 각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권위주의 혹은 비민주적 체계와 양립할 수 있다. (235면)
법의 지배에 관한 이 입장에는 또 다른 한계가 있다. 옹호자들과 비판자들에 따르면, 형식적 합법성은 개인이 분배적 평등이라는 목표를 먼저 정하고 개별 사건에서 정의를 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 목표는 사건마다의, 맥락에 민감한 결정이 행해질 것을 요구한다. 이는 일반성, 형식적 평등, 명확성, 그리고 예측가능성을 위협한다. (235면)
"사람이 아닌, 법의 지배"라는 사상은, 있는 그대로 강력한데, 법이 자기해석적이거나 자기적용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의해 오랫동안 추구되었다. (240면)
법에 의한 지배가 법관에 의해 지배로 될 가능성은 더 이상 온건한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적인 우려의 문제이다. (243면)
법관에 의한 지배는 정치적인 문제를 법의 문제인 것처럼 취급하고, 정치적 결정을 순수히 법적 해석이라는 위장 아래 감추면서, 책임지지 않는 엘리트에 의한 권한침해라는 유형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244면)
역사학자인 폴 존슨(Paul Johnson)은 지난 천년이 떠맡았던 커다란 일은 국민국가 내에 법의 지배를 확립한 것이었고, 새로운 천년을 위한 계획은 국제적 혹은 전 지구적 차원에서 법의 지배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첫 번째 기획은 진행 중인 일로 남아 있고, 두 번째 계획은 이제 금방 시작하였다. (249면)
규정에 의한 지배인 형식적 합법성은 재량과 판단, 타협 혹은 상황에 맞는 조정 등을 요구하는 상황에서는 비생산적이다. (274면)
법의 지배전통은 수세기 동안 만들어지고 있다. (27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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