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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7일 목요일

왕샤오광, 민주4강 - "인민민주"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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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인(4): '인민민주'의 꿈

1. 
케이건(Robert Kagan)은 『역사의 회귀와 꿈의 종말(The return of history and the end of dreams)』에서 민주(民主)와 전제(專制) 사이의 경쟁을 “21세기 세계의 주요 특징”으로 간주한다. 아울러 냉전의 종결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데올로기 경쟁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니며, 중국과 러시아 양국의 굴기(屈起)와 함께 되살아나고 있음을 표명한다. 그는 이러한 고찰을 바탕으로 “전세계 민주주의자들이 굳게 결속”하여, “민주국가들의 전 지구적 협조 혹은 동맹” 건설을 통해, 준열(峻烈)한 이데올로기 경쟁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쟁취해야 한다고 호소한다.(1)

2.
수십 년 전의 중국이었다면 케이건과 같은 태도는,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는 제국주의자의 야욕이 체현된 것이라 여겨졌을 것이나,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보다 예의를 차려서 냉전 이데올로기의 잔재라 불릴 것이다. 케이건 같은 신보수주의자와 비교하여, 키신저(Henry Kissinger)와 같은 고전적 현실주의자는 중국에 대해 확실히 보다 온건하고 실용주의적인 자세를 취한다. 사실상 진정한 차이는 어느 쪽이 중국에 대해 더 우호적인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주의자의 도덕적 오만함과 전도사적 어조가 조금 덜하다는 점에 있다. 

신보수주의자들은 한편으로 미국의 역량과 패권을 동원한 전세계적 민주화를 노골적으로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이 종종 이데올로기적 문제를 무시하고 비민주 국가와 긴밀한 정치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말한다. 예를 들어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 그리고 미국과 파키스탄 사이의 관계는 확실히 신보수주의자들의 민주 원칙과 상호 모순된다. 케이건은 보통 이러한 모순이 사실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미국의 ‘전략적 사고’에서 비롯한 것이라 해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은 다음과 같은 의혹을 여전히 불식시키지 못한다. 미국의 이러한 ‘전략적 사고’는 과연 전세계의 복리(福利)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예외적 지위를 옹호하기 위해서인가? 대체로 미국과 우호적인 협력 관계에 대해서는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무시할 수 있고, 미국에 잠재적 혹은 현실적인 위협이 되는 것은 이데올로기 측면에서 철저하게 부정하면서 동시에 그 위험성을 과장한다. 

3.
지난 수십 년에 걸쳐, 국내외의 각종 사안을 처리함에 있어서 중국의 이데올로기적 색채는 점차 옅어졌다.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만약 이데올로기의 기치를 계속해서 내걸었다면, 중국이 소련과 반목했을 리도 없고, 미국과 수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중국은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것에 상당히 익숙하다. 1949년에 발표한 《인민민주전제정치를 논하다[论人民民主专政]》(2)에서 마오쩌둥(毛泽东)은 인민민주주의와 자산계급민주주의의 대립을 특히 강조했다. 인민민주전제정치는 바로 “인민 내부에 대한 민주의 측면과 반동파에 대한 전제적 측면”의 상호 결합이다. 여기에서 인민은 “노동자계급, 농민계급, 도시소자산계급과 민족자산계급”을 포함하며, 반동파는 바로 지주계급과 관료자산계급 및 그 대표를 포괄한다. 

사회적인 상황 변화에 따라 “전제정치”와 같은 어휘는 중국에서도 점차 희미해졌고, 나아가 더 이상 원래의 긍정적이고 혁명적인 의의를 지니지 않게 되었다. 비록 “전제정치”에 대한 강조는 비교적 줄어들었지만, “인민민주”의 용법은 여전히 고수되고 있다. 1978년 덩샤오핑(邓小平)의 담화 《사상해방, 실사구시, 일치단결하여 앞을 보자[解放思想,实事求是,团结一致向前看]》로부터 2013년 제18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의 《전면적 개혁심화와 관련하여 몇 가지 중요한 문제에 대한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결정[中共中央关于全面深化改革若干重大问题的决定]》에 이르기까지 “인민민주”는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으나, 전제라는 말은 더 이상 함께 쓰지 않으며, 인민민주와 자산계급민주의 대립 또한 더 이상 강조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중국 정부 당국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민주라는 말의 사용과 관련하여 자기조정을 하고 있다는 것―비록 이러한 조정과 그 정도에 대해 모든 사람이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과 함께 이데올로기적인 색채 또한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4.
중앙편역국(中央编译局) 부국장 위커핑(俞可平) 교수가 2006년에 발표한 《민주주의는 좋은 것[民主是个好东西]》(3)이라는 짧은 글은 여러 곳에 널리 전재(轉載)되었다. 이 글에서 저자는, 비록 민주가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거기에는 각종 제약이 있지만, “민주는 인류가 지금까지 발명하고 보급했던 모든 정치 제도 가운데 가장 폐단이 적은 것”이며, “다시 말해 상대적으로 민주는 현 시점에서 가장 좋은 정치제도“임을 분명하게 제기한다. 

사실 이 문장 자체는 과도한 이론적 논쟁이나 제도 구상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제목이 보여주는 선명한 입장과 작자 자신의 신분으로 인해 광범위하게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2009년, 위커핑은 《민주로 행복한 중국 만들기[让民主造福中国]》라는 제목으로 한 편의 대담록을 출판하였다. 민주에 대한 지속적인 긍정 외에도, 그는 중국이 어떻게 점진적으로 민주를 실현할 것인가에 관한 일련의 구체적인 관점들을 설명한다. 

목표와 관련하여, 민주의 최종적인 목표는 인민민주이다. 형식 측면에서는 선거에 의한 민주를 중심으로 하며, 협의를 통한 민주를 보조로 삼는다. 실현 방식 차원에서는 증량민주(增量民主)(4)개념에 의거하여, 당내(黨內) 민주로써 사회 민주를 선도하고, 기층(基層) 민주로부터 상층 민주를 향해 점진적으로 추진하며, 적은 범위의 경쟁에서 시작하여 보다 큰 경쟁으로 나아간다.(5) 하지만 대체 당내의 어느 층위에서 가장 먼저 선거와 협의 민주를 추동 할 것인가? 어떻게 당내 민주를 통해 사회 민주를 선도할 것인가? 기층 민주에서 상층 민주로 추진하는 방식에 비해 위로부터 내려오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지 않은가? 어떻게 해야 경쟁을 더욱 잘 구현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은 모든 것들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연구하여 논변을 구성하고, 또 시험해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기층과 상층의 관계 측면에서 말하자면, 위로부터 아래로의 민주 개혁이 중국의 정서에 더욱 적절하다는 자오딩신(赵鼎新)의 관점이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6) 전체적으로 볼 때 민주 문제에 대한 위커핑의 논변에서는 주로 현재까지 중국에 축적된 정치적 역량에 근거하여, 비교적 온건한 방식으로 인민민주를 실현하는 각종 돌파구로 나아가고자 한다. 

5.
위커핑의 온건한 관점과 비교하여 왕샤오광의 《민주사강[民主四讲]》(7)은 예봉(銳鋒)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이 책은 현재 민주문제에 관한 중국 학자들의 저술 가운데 가장 빼어난 논의를 보여주며, 동시에 민주문제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사유라 할 수 있다. 《민주사강》은 2007년에 왕샤오광 교수가 칭화대학(清华大学)에서 했던 네 차례의 강연을 바탕으로 하여, 그 이듬해에 출판되었다.(8) 이 책은 민주 및 중국 모델에 관한 위커핑의 관점을 뒤집는다―비록 전적으로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고 할 수 있다. “민주는 좋은 것”이라는 말에 대해, 왕샤오광은 역사적으로 볼 때 “민주”가 서방 정치 사상사에서 오랜 기간 동안 “나쁜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지난 100여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민주가 “좋은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왕샤오광은 독특하게도 민주의 본의(本義)와 민주의 변질을 구분했다. 그가 보기에 민주의 본래 함의는 바로 인민이 주인 되는 것이며, “인민주권” 혹은 인민민주를 가리킨다. 보다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말하면, “(그들이 선출한 대표가 아닌)전체 인민들이 평등하게, 차별 없이, 국가의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국가를 관할하는 것, 이것이 민주의 가장 원시적이고, 가장 간단한 함의이다.”(9) 이로부터 왕샤오광은 민주 앞에 수식어를 덧붙이는 일체의 민주 형식이 모두 민주의 변질된 형태이며, 그 수식어가 “자유(自由)”든“헌정(憲政)”이든 혹은 “대의(代議)”든 간에 모두 “새장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그는 수식어가 붙은 모든 민주 형식이 민주의 이름을 빌려, 실질적으로는 “귀족 통치” 혹은 “엘리트 통치”를 실시하는 것임을 지적한다.(10) 

왕샤오광의 전체 논술에 있어서 가장 주요한 비판 대상은 현재―이론적인 차원이건 실천적 차원이건 간에―가장 널리 퍼져 있는, “경쟁적인 선거”를 특징으로 하는 대의민주이다. 그는 이러한 대의민주제 아래에서 인민은 “선거인”이 되고, 민주(民主)는 “선주(選主, 주인 뽑기)”로 바뀌었고, 따라서 민주체제(民主體制)는 사실상 “선주체제(選主體制)”가 된다고 보았다. 이처럼 경쟁적인 선거를 특징으로 하는 민주 이론은 슘페터(Joseph Schumpeter)의 손에서 확립되었다. 슘페터는 고전적 학설 가운데 인민의 “정치 문제에 대한 결정”이라는 주요한 권력을 이차적인 위치에 두며, “선거를 통해 정치적 결정을 내릴 사람을 뽑는 것”을 가장 주요한 목표로 삼으면서, 선거민주체제에 대한 전형적인 변론을 완성하였다.(11) 왕샤오광이 보기에 슘페터가 말한 결정권과 선거권 사이의 전도(顚倒)는 잘못된 것이다. 서방에서 민주의 기원과 변화, 민주의 조건, 민주의 기제와 운영 및 민주의 실효성 등의 문제에 대한 탐색을 통해, 《민주사강》은 현재 유행하고 있는 민주제, 특히 그 선거민주 형식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전개한다.

《민주사강》은 비판을 중심으로 하는 저작이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한 편의 부정적인 저술이다. 그러나 왕샤오광은 비판과 부정의 과정에서 동시에 자신의 건설적인 사유를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슘페터에 의해 전도된 관계를 재차 전도하는 것이며, 슘페터가 비판한 고전 이론의 입장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인민 참여와 정치 결정의 문제를 제일의 위치에 두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건설적 사유가 바로 왕샤오광이 견지하는 “진정한 민주”이며, “변질된 민주”와는 구분된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진정한 민주는 적어도 아래와 같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원칙에 있어서 인민이 진정한 주인이 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참정 기회를 가진다. 둘째, 그 성격 측면에서 이것은 선거식 민주가 아닌 참여식 민주이며, 모든 공민이 국가의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다. 셋째, 형식상에서 선거제가 아닌 추첨제를 채택하여, 모든 공민이 주인으로서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12) 이러한 인민민주의 테두리 안에서 “인민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정부의 관리에 참여하고, 정부의 모든 행위는 인민의 바람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13) 왕샤오광의 분석에서 이와 같은 진정한 민주의 전범은 아테네의 민주이다. 비록 아테네의 민주는 노예제를 기초로 삼았고, 동시에 제한적인 민주이지만, 그는 인민민주의 측면에서 아테네의 민주제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장 민주적인 정치 제도”(14)였다고 본다. 따라서 그는 이러한 원래의 민주 기제 및 그 정신으로 돌아가서, 그것을 확대할 것을 주장한다.

6.
물론 왕샤오광도 그가 비판하는 경쟁적 선거민주가 현 시점에서 “실제로 운용되고 있는 민주”이며, 그가 추숭하는 진정한 민주는 아직 “이상적인 민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는 또한 이상적인 상태의 민주가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고, 현재에도 없으며, 어쩌면 앞으로도 출현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왕샤오광은 이러한 인민주권의 이상적 민주가 여하간 “모든 민주 제도가 추구해야 할 하나의 목표”라는 관점을 고수한다. 현실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이상적 민주는 척도(尺度)의 의의 또한 지니고 있으며, “우리에게 하나의 척도를 제공하여 현실 속의 각종 민주제도 가운데 어떤 제도가 더욱 이상적인 민주의 표준에 근접하였고, 어떤 제도가 이상으로부터 더 멀리 떨어졌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15) 이러한 점에서 보면 왕샤오광은 이상적 민주주의자이다.

하지만 이상적인 인민민주가 모든 민주제도의 목표라고 한다면, 대체 어떻게 이 목표에 가능한 한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 또한 자연히 현실적인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해 왕샤오광의 《민주사강》은 아직 비판 작업만을 완성했을 뿐이다. 《민주사강》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야 하며, 그래야 비로소 도대체 어떻게 인민민주의 꿈을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1) 卡根(Robert Kagan),《历史的回归和梦想的终结》,陈小鼎译,北京:社会科学文献出版社,2013年,第120-121页、第158-159页.
(2) 毛泽东£º¡¶毛泽东选集¡·£¬北京£º人民出版社£¬1991年.
(3) 俞可平:《民主是个好东西:俞可平访谈录》,北京:社科文献出版社,2006年.
(4) [역주] 《민주로 행복한 중국 만들기[让民主造福中国]》에서는 위커핑이 제기한 ‘증량민주’ (Incremental Democracy) 개념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견실한 경제적, 정치적으로 축적된 기초가 있어야 하며, 정치와 법률적 구조를 세워야 한다. 정치 개혁은 점진적이고 온건하게 진행되어야 하며, 당내민주와 기층민주는 마땅히 현재 중국 민주의 집중적인 구현이어야 하고, 절대적인 ‘정태적 안정’이 아니라 ‘동태적 안정’을 장려해야 한다. 민주는 반드시 법제화와 규범화의 기초 위에서 질서 있게 진행되어야 하며, 민주와 법치는 동전의 양면으로서 분리될 수 없다.” (闫健、俞可平:《让民主造福中国:俞可平访谈录》,中央编译出版社,2009年,第181页)
(5) 闫健、俞可平:《让民主造福中国:俞可平访谈录》,中央编译出版社,2009年,第3-33页,尤其第32页.
(6) 赵鼎新:《民主的限制》,北京:中信出版社,2012年,第19、24页.
(7)  王绍光:《民主四讲》,北京:三联书店,2008年.
(8) [역주] 《民主四讲》의 한국어 번역본은 2010년에 출판되었다. (왕샤오광 저, 김갑수 역, 《민주사강》,서울: 에버리치홀딩스, 2010).
(9) 王绍光:《民主四讲》,第2页.
(10) 王绍光:《民主四讲》,第33、68-70页.
(11) 熊彼特:《资本主义、社会主义与民主》,吴良健译,北京:商务印书馆,1999年,第395-396页.
(12) 王绍光:《民主四讲》,第48-49、53、65、242-252页.
(13) 王绍光:《民主四讲》,第137页.
(14) 王绍光:《民主四讲》,第48页.
(15) 王绍光:《民主四讲》,第137页.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중국, 중국인] Aporia Reivew of Books, Vol.1, No.4, 2013년 12월, 천지앤홍(陈建洪), 중국 난카이 대학(南开大学) 철학과 교수; 이수현 옮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대학원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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